"개인워크아웃 신청자들은 자기 능력이 닿는데까지 돈을 갚으려는 사람들입니다. 사전상담제를 도입하면 이와 같은 성실한 채무자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

홍성표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사진)은 평소 "같은 금융채무불이행자라 하더라도 개인워크아웃 신청자와 법원을 이용하는 사람은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들은 원금의 절반 이상을 갚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법원을 이용하는 채무자들은 매달 일정액만 납부한 뒤 빚을 청산하거나 아예 돈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서다.

홍 위원장은 "신용사회로 가려면 자기 채무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워크아웃 등을 통해 일부나마 빚을 갚을 수 있는 사람들도 파산을 신청하도록 부추기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나 법무사와 짜고 자산을 빼돌린 뒤 파산을 신청하는 사기 사건이 많아졌다는 것이 단적인 예"라며 "무분별한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 선고로 금융사들이 입는 손실만 한 해 25조원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홍 위원장은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 개정이 이뤄지면 의도적으로 빚을 안 갚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입법예고된 통합도산법 개정안을 보면 개인회생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여주는 조항이 있다"며 "상대적으로 적은 돈만 갚으면 되는 법원의 개인회생으로 파산자들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장은 이와 같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는 통합도산법 개정안에 사전상담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넣어야 한다고 법무부에 건의한 상태다. 법원에서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을 신청하기 전에 신복위나 신용회복기금 같은 민간기구에서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위원장은 "선진국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채무자가 그동안 얼마나 성실히 돈을 갚으려 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채무자들을 위한 제도를 만든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신복위는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또 금융사들과 맺은 협약을 바탕으로 채무조정을 해주고 있는데 해당 협약에 대한 법적 강제성은 없다. 외국계 금융회사나 대부업체 등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신복위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은 최근 신복위 업무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자는 내용의 '신용회복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홍 위원장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신복위가 법정 기구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며 "다만 금융사와 개인 간 금융거래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여러 논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