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中道)'노선이 원리원칙없이 외도(外道)로 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한국경제신문 2009년 6월30일 시론).당시 구체적으로 지적하진 않았지만,서민대책을 화두로 한 중도노선은'정도(正道)'를 벗어나 좌파 포퓰리즘에 맞닿는다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 것이다. 필자의 우려는 그대로 현실화되는 듯하다. 지난 25일 정부와 여당은 감세정책 기조 유지라는 기존의 입장을 뒤집는 증세 방안을 발표했다. 서민대책을 포함해 그간 표방해온 '중도'노선을 견지하기 위해 내년부터 3년간 약 10조5000억원의 세금을 더 거둬들일 것이라고 한다.

중도 노선의 명분이 서민대책이고,그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감세'에서'증세'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우선 심각한 문제는 감세에서 증세로 전환하는데 따른 현 정부의 정책 기조 일관성 상실에서 찾을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이명박 정부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는 좌파 노선에 대한 많은 국민들의 염증 때문이었다. 서민대책을 위한 중도 표방과 갑작스러운 증세 기조로의 전환은 정권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부자 때문에 가난해진 서민을 지원해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강화시킨다.

시장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자유주의는'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부익부'를 일궈내는 것은 맞지만 '빈익빈'은 자유주의 시장 질서를 외면하거나 무시할 때 조장된다.

이번처럼 대기업과 고소득자 세율은 인상하고,중소기업과 서민은 덜 내는 세제는 마냥 바람직하지 않으며,정치권에서 식상하게 사용하는 계층 간 화합과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서도 왜곡된 인식만 심어준다. 부자 때문에 가난해진다는 잘못된 '빈익빈'인식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진정한 서민대책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사회 전반의 발전 동력인 경쟁력 강화에 해가 될 뿐이다.

정책기조 전환도 잘못이지만,당국이 표방한 서민지원과 재정건전성 확보라는'증세'의 명분도 구체적으로 보면 재고의 여지가 많다. 재정건전성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선 공약대로 공기업의 민영화이지 증세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서민지원도 그 명분을 누구도 탓할 수 없지만,그렇다고 면밀한 검토 없이 복지비용을 증대시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복지 비용은 그대로 두지만,선별해 줄일 수 있는 예산은 줄이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증세가 아니라 불요불급한 정책 부문의 예산절감과,특히 복지예산 집행의 누수 현상 방지가 중요하다.

정책의 효율성은 재화의 투입 대 산출 비율이 아니라 투입과 산출된 재화에 대한 사람들의 부여가치가 어떠한가에 좌우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복지재정도 이 같은 관점에서 검토돼야 한다. 일례로 일부 여권에서 추진하는 유아 무상의무교육은 우리가 복지국가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지만,실상을 들여다보고 계층 간 다양한 교육욕구에 관계없이 국가가 일률적으로 공급하는 교육서비스가 과연 효율적인가를 면밀히 따져 봐야 한다. 투입에 비해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잘못된 정책을 당장 손질만 해도 예산을 절감할 분야가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그 중 하나로,교육 폐혜의 근원인 고교평준화정책을 폐지하면 연간 2조원 이상의 사학재정결함보조금을 절감할 수 있다. 사학재정결함보조금 폐지는 사학 경쟁력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균형발전'과'계층화합'명분의 증세는'외도'이다. 효율 증진과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정도'가 되고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실용'이 된다.

김정래 <부산교대 교수ㆍ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