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끝났다. 호상이었다. 국장은 품위가 있었고 노제나 굿이 없었어도 온 나라가 깊은 애도의 물결로 뒤덮였다. 그 와중에 들려온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직론은 관심을 끌기에 족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을 일컬어 "전직들이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며 이희호 여사에게 덕담을 건넸다. '전직들은 현직이 봐주지 않으면 불쌍하다'는 퇴역군인의 자조 같은 그의 말 속에는 페이소스가 배어 있다. 생각해 보니 전직 대통령은 이제 세 분밖에 남지 않았다. 새삼 그분들의 존재란 어떤 것인지,퇴임 후의 소임과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지,과연 전직의 윤리란 무엇인지,되새겨 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살아 있는 전직 대통령이 많은 나라는 그만큼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또는 퇴임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 많을수록 행복한 민주주의에 근접한 나라라고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교 위기 해소에 적극 나서고 몸소 해비타트 운동을 실천했던 지미 카터나 여기자 두 사람의 석방을 위해 북한 방문에 나서 무사 송환시키면서도 성과를 떠벌리기보다는 정책결정권자가 아니라며 겸손해한 빌 클린턴은 존경받는 전직의 대표적인 상징들이다.

따지고 보니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전직이 없진 않았다. 연달아 떠나보내야 했던 노무현 김대중 두 분이야말로 아름다운 전직의 반열에 오르는 데 손색이 없었다.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 친환경적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지역과 지방 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남북화해와 평화 구도의 정착,민주주의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초지일관 매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비록 나름의 허물이 없진 않았으되 존경받는 전직에 거의 근접한 경우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직들은 퇴임 후 옥고를 치르거나 이런저런 의혹으로 측근들이 처벌을 받는 등 수모를 겪는 일이 계속됐다는 점에서 대부분 그리 평탄치는 못했다.

퇴임 후 국가변란과 뇌물죄 등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입장에서는 자신을 사면해 준 현직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고,또 전직들을 초대해 대접을 해 준 데 대해서도 한없는 행복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전직의 윤리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추스를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은 당연직 국가원로로 통한다. 하지만 정작 나라가 어지러울 때 원로로서 소임을 다해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누구나 퇴임 후 겪을 수밖에 없는 권력 상실의 충격을 이겨내는 일도 그렇지만 매사 전직으로서 처신이 어렵고 하물며 나라를 위한 역할을 떠맡기도 녹록지 않았기에 우리나라 전직들의 행보는 늘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전직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면 때론 그 이상으로 현실정치에 지나친 관심을 쏟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습을 보인 경우도 있었고,돌출성 과격 언사로 언론의 가십성 관심을 끈 적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아무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을 계기로 전직은 빛났다. 뒷말이 없진 않지만 '전직 대통령을 위한 국장'의 결단을 내린 현직도 함께 빛났다. 이제 세 분밖에 남지 않은 전직 대통령들이 현직 시절 퇴임 후 자신의 처지를 미리 예상했거나 임기가 끝난 뒤 어떻게 처신할지 미리 다짐해 놓은 게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도 이만하면 전직 대통령 수에 관한 한 선진국 수준인데,지금쯤 섣부른 전직 역할론보다는 전직의 처신과 윤리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시급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전직이 될지 현직일 때 미리미리 생각해 둬야 하지 않을까.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