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창동 갤러리] 골목길 굽이굽이 '미술관 순례'…그깟 오르막길이 대수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옹기종기 모여있는 미술관엔 유리잔ㆍ조명ㆍ서화 각종 전시가
영화에서 나올듯 한 예쁜집들‥평창동 산책의 또다른 즐거움
영화에서 나올듯 한 예쁜집들‥평창동 산책의 또다른 즐거움
고요한 거리에 콕콕 박혀있는 갤러리를 만나러 서울 평창동에 갔다. 북한산 자락에 다소곳하게 안겨있는 듯한 평창동은 서울에서 몇 안되는 부자촌.그래서인지 길가 곳곳에 자리잡은 갤러리들도 숨을 죽이고 있는 듯 차분하게 방문객들을 맞는다. 그래서 고즈넉한 갤러리 순례를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단 오르막길이 상당하니 편한 신발을 신자.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가 잠잠한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다.
평창동에서 갤러리가 밀집된 곳을 한번에 둘러보려면 가나아트센터를 기점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버스(1020,1711,1020번 등)를 타고 롯데 · 삼성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린 다음 표지판을 따라 조금만 걸어올라가면 가나아트센터가 나온다. 심은하 · 한석규 주연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 전에는 늦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미리 체험하는 작품들이 대기하고 있다.
유리잔 1000여개가 투명하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최수환),빨간 루돌프 3마리와 하트 모양 조명이 있는 원뿔형 트리(정국택),꽃 모양 조명과 레고 인형으로 장식한 트리(윤정원),한지를 붙인 LED 패널을 탑처럽 쌓은 트리(전가영),빛이 흐르는 듯한 배관파이프로 만든 트리(이장섭),산타클로스와 루돌프(유영운) 등 단박에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작가 8인의 작품은 미술 문외한이라도 편하게 즐길 만하다. 전시장에서 나와 가나아트센터 곳곳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 곳곳에 설치된 조각품을 잠시 구경하다가 야외 나무계단에 잠시 걸터앉아 향후 계속될 오르막길에 대비해 잠깐 휴식을 취하는 건 어떨까.
가나아트센터를 마주본 상태에서 왼쪽 방향을 택하면 몇걸음씩 떨어져 토탈미술관,키미아트,그로리치화랑,갤러리세줄 등이 나온다. 가나아트센터와 거의 붙어있는 듯 인접해 있는 토탈미술관은 붉은 담벽이 인상적이라 금방 찾을 수 있다.
토탈미술관을 비롯해 그로리치화랑과 갤러리 세줄은 현재 진행되는 전시가 없어 아쉽다. 이들을 지나쳐 찾은 키미아트는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갤러리답게 아담한 맛이 있다. 갤러리 입구 옆에 있는 빨간 벤치가 바로 눈길을 끈다. 전시관과 정원에서 개관 5주년 기념 전시를 둘러본 다음 2층으로 올라가면 카페가 나오는데,전망이 좋다.
갤러리 순례를 계속하려면 다시 가나아트센터 쪽으로 내려와 토탈미술관을 지나 꺾어져 내려가자.깔끔한 회색 건물인 상원미술관에서는 '서울 문화원형 표현전'이 열리고 있다. 작가 25인이 도자,섬유,금속,설치,일러스트레이션 등 여러 방법으로 '서울다움'을 표현한 전시로,이번주 토요일(29일)이 마지막이다.
지금까지 갤러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면,마지막으로 둘러볼 김종영미술관은 약간 떨어져 있다. 가나아트센터 기준으로 도보 10~15분 소요되는 김종영미술관에서는 고 김종영 조각가의 서화를 전시하는 '각도인서(刻道人書)' 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적 작가로 평가받는 그는 18세에 전국서예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할 정도의 서예 실력을 갖추었고,평생 많은 서예 작품을 남겼다. 이 전시에서는 그가 평생 쓰고 그린 서예와 서화 작품 중 엄선된 40점이 공개된다.
지금까지 소개한 평창동 갤러리들을 모두 둘러보는 데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전시회를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지만,그 자체만으로도 인상적인 갤러리 건물 구경도 빼놓지 말자.건물 자체도 좋지만 갤러리 정원이나 외부에 있는 미술 작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갤러리 순례를 마쳤다면 평창동의 숨겨진 묘미를 찾아가야 한다. 부촌으로 알려진 평창동에는 드라마 세트장에서 뛰쳐나온 듯 예쁘고 독특한 주택들이 즐비하다.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남의 집' 구경이 평창동 나들이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주민들의 사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산책을 즐겨보자.
갤러리를 더 돌아보고 싶다면 평창동사무소,자하문터널,구기터널 쪽에 흩어져 있는 미술관을 더 방문해도 좋다. 이왕 나선 김에 그냥 돌아서기 아쉽다면 인근 세검정에 잠시 들러도 괜찮다. 인조반정 때 참가자들이 반정의 뜻을 다지며 칼을 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