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이들 거장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통점 하나.

200여년 전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진 '몰스킨' 노트의 애호가라는 것.'위대한 개츠비'의 피츠제럴드,'율리시스'를 쓴 제임스 조이스 등과의 교류를 통해 문학적 소양을 키울 수 있었던 헤밍웨이의 파리 생활은 평생 그와 동행하게 될 몰스킨 노트를 만났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의가 있었다.

"그곳은 따뜻하고 깨끗하며 정겨웠던 즐거운 카페였고,나는 낡은 외투를 말리기 위해 옷걸이에 걸고 비에 젖은 낡은 펠트 모자는 긴 의자 위의 모자걸이에 걸어놓고 카페오레를 주문했다. 웨이터가 그것을 가져다주었고 나는 재킷에 들어있는 노트를 꺼내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


에세이 '헤밍웨이,파리에서 보낸 7년' 중의 한 대목이다. 아마도 그때 헤밍웨이는 파리에 머물 때 몰스킨 수첩에 썼다고 알려진 명작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메모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요즘도 마땅히 장려돼야 할 습관이다. 최신 스마트폰보다 손때가 묻어있는 노트에 그때 그때 적는 아이디어가 훨씬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작년에 새로 공개된 시인 김수영의 노트(그가 서울대와 서라벌예대에 출강할 때 무렵의 것)에는 T S 엘리어트와 W H 오든의 시가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그가 쓰던 노트는 일본의 디자인 브랜드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D&Department Project)' 제품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노트를 주로 생산하는 이 브랜드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선 구할 수 없어 일본에 갈 일이 있다면 대형 문구점인 '로프트'나 '도큐-핸즈'에 들러 구입하면 된다.

좋은 노트는 쓰기 편하면서도 단단하게 묶여 있어 쉽게 망가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명성이 높은 노트들은 그 역사가 꽤 유구한 편이다. 최근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유쾌하게 변형했던 '로디아(RHODIA · 1만~3만원)'는 1920년 프랑스 리옹에서 출발했고,일본의 문구 브랜드 '델포닉스(DELFONICS)'나 '하이타이드(HIGHTIDE)' 노트 역시 만만치 않은 내공을 자랑하고 있다. 두 브랜드 모두 도쿄 오모테산도 힐즈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강남 가로수길이나 압구정동에 흩어져 있는 '북바인더스디자인''티오도' 같은 팬시숍에서는 흥미로운 디자인의 노트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시트로앵 DS와 IBM의 전기식 타자기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공산품으로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3만원 내외의 '쿼바디스 다이어리',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도 나오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핸드 메이드 노트 '시아크'(CIAK · 1만5000원),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독일 '테뉴에' 노트 등은 '남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꺼내들 수 있는' 노트로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이다.

반면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프리비아몰(privia.hyundaicard.com)은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의 획기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노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어서 작지만 의미있는 선물을 하고 싶을 때 기억해둘 만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노트들이 모두 해외에서 들어온 것들이라 조금은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다. 최근 부쩍 고급스러워지고 있는 '양지사'와 '모닝글로리' 제품들은 차치하고라도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가보면 수입 제품들과 함께 국내 디자이너들의 문구류를 만날 수 있다. '메이드인 코리아' 노트로 눈에 띄는 것은 '오첵(O-Check)''mmmg''안테나 샵(Antena Shop)'을 들 수 있다. 전반적으로 남자보다는 감각적인 여성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노트들이다.

서울 효자동의 '스피링 컴 레인폴',안국역의 'mmmg',신사동 가로수길 초입의 카페 '리빙 팩토리',건대 후문에 있는 카페 '울랄라' 등 스테이셔너리 쇼룸과 카페가 결합한 형태의 스토어들도 운영되고 있다.

이밖에 몇년 전부터 대형 전시회가 기획되면서 모네,마네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이 들어간 노트들도 인기를 끌었다. 국내 작가로는 여성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육심원의 그림이 들어간 노트들이 교보문고와 갤러리에 딸린 아트숍에서 팔리기도 했다. 또 탤런트 변정민이 운영하는 '비엔웍스'나 연말마다 청담동 카페 A.O.C에서 파는 사진가 김용호의 사진이 담긴 다이어리 노트도 매력적인 문구류들이다.

이런 노트에 어울리는 펜은 값비싼 '몽블랑'의 만년필만은 결코 아니다. '파버 카스텔(Faber Castell)'의 심플한 펜,'로트링(Rotring)'의 아트펜이 아니라면 차라리 동네 문구점에서 구할 수 있는 '파커' 펜이 더 멋스러운 찰떡궁합일 수도 있다.

'데이즈드&컨퓨즈드' 수석에디터 kimhyeont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