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 맨해튼 월가(금융 중심지)에서 채권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뉴스가 터졌다. 모건스탠리의 국채파트 수석 트레이더인 제임스 오브라이언 팀장이 토론토 도미니언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브라이언은 지난 2년간 8억달러의 수익을 회사에 안겨줘 모건스탠리의 대표선수 중 한 명으로 불렸던 인물.하지만 금융위기에다 재무부의 규제로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자 보너스를 합쳐 연봉 500만달러를 제시한 캐나다 은행으로 떠나 버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씨티그룹에서도 고급 인력이 대거 빠져 나가고 있다. 월가에서는 메릴린치가 BOA에 합병된 후 메릴린치 출신의 고급 인력 25%가 BOA를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그룹에서 아시아 · 태평양을 맡았던 아제이 방가 대표를 비롯한 10여명의 고위직 인사들도 블랙스톤과 도이치뱅크,중소 증권사와 헤지펀드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같은 인력 대이동은 월가의 금융산업 판도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1년 동안 월가의 5대 투자은행 체제(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메릴린치,리먼브러더스,베어스턴스)가 무너졌다. 이제는 JP모건과 골드만삭스가 투톱으로 나섰다. 지난 5월 스트레스 테스트(경기 악화에 대비한 자산건전성 시험)를 무사 통과한 두 회사는 6월 구제금융을 모두 갚았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씨티그룹과 BOA는 68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상환한 10개 금융회사 명단에 들지 못하면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구제금융은 총 600개 금융회사에 2400억달러가 투입됐다. 모건스탠리도 구제금융은 갚았지만 수익성을 회복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JP모건과 골드만삭스가 2분기 각각 27억달러와 34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모건스탠리의 순이익은 1억5000만달러에 불과했다.

현지에서 자산 10억달러 규모 헤지펀드 벨스타그룹을 운용하고 있는 대니얼 윤 대표는 "기존 투자은행들이 레버리지(차입) 비율을 30배에서 10배로 줄여야 하는 처지여서 투자은행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들 수밖에 없고 이들의 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도전이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 대열에서 앞서가고 있는 곳은 바클레이즈캐피털,노무라증권,RBC(로열뱅크오브캐나다),토론토 도미니언은행 등 외국계 금융회사.올초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한 영국계 바클레이즈캐피털은 상반기 중 17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려 리먼브러더스를 정상화시켰을 뿐 아니라 선두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무라증권과 캐나다계 RBC는 지난달 뉴욕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부터 국채 프라이머리 딜러로 선정받았다. 국채 프라이머리 딜러는 중앙은행이 공인하는 국채 딜러로 현재 18개사다.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가 빠진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노무라는 BOA를 주식 및 주식파생상품 1위로 육성시킨 시어런 오켈리씨를 주식담당 대표로 영입하고 미국 법인 전체 인력을 850명에서 연내 1200명까지 늘리기로 한 상태다. RBC와 더불어 캐나다 은행 쌍두마차인 토론토 도미니언은 미국 내 자회사인 TD뱅크를 통해 적극적인 인수 · 합병(M&A) 전략을 짜고 있다.

월가 선두권 진입을 노리는 또 다른 그룹은 제프리스,모건 키건,브로드포인트 등 미국 본토의 중위권 증권사들이다. 제프리스는 지난 6월 UBS의 의료 IB 부문 인력 36명을 통째로 데려왔다. 2007년 말부터 대형 IB에서 240명의 신규 인력을 영입했다는 브로드포인트의 리 펜스터톡 사장은 "우리도 드디어 과거 베어스턴스나 리먼브러더스 같은 지위로 올라설 기회가 왔다"고 포부를 밝혔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7년까지 고도 성장을 구가하며 상업은행을 넘어섰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하루 아침에 와해돼 버린 월가의 투자은행들.이들의 빈 자리가 어떻게 메워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욕=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