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1년] (2) 먹구름 걷히는 영국‥은행원들 다시 '카나리워프'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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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격변의 현장을 가다
UBS 런던에 근무하는 마커스 버나드씨(34)는 6개월 전 '사전해고통지'를 받았다. '프리노티스(pre-notice)'로 불리는 사전해고제는 6개월간 고용을 연장하면서 재취업 준비기간을 주는 대신,만약 그 안에 회사가 좋아지면 재고용할 수 있는 제도다. 6개월이 다 된 지금 버나드씨의 표정은 밝다. 회사가 좋아져 계속 다닐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버나드씨 외에도 당시 사전해고통지를 받은 직원들 중 상당수가 재고용 희망에 들떠 있다.
런던 템스 강 동쪽에 자리잡은 금융 신도시 '카나리워프(Canary Wharf)'.유수의 글로벌 IB(투자은행)들이 몰려 있는 이곳은 연초만 해도 쫓겨난 해고자들로 분위기가 어두웠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금융시장이 회복되고 경기지표가 나아지면서 금융사들의 실적도 좋아져 재고용되는 은행원들이 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요리학원을 전전하던 은행원들이 금융가로 복귀하고 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대표적 영국계 은행인 바클레이즈의 경우 2분기부터 IB 부문이 급속히 좋아지면서 상반기 순이익이 31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1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HSBC도 상반기 33억5000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당초 6억달러 적자를 예상했던 시장 전망을 무색케 했다. 리처드 노밍턴 런던금융시 수석매니저는 "정부의 은행에 대한 자본 투입과 지급 보증으로 금융 시스템이 안정을 찾은 데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면서 기존에 투자한 자산가치가 불어난 게 실적 개선의 주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디폴트(국가 부도) 위기설까지 제기되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2차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던 영국 경제가 위기 1년 만에 예상보다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외부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현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작년 3분기 마이너스로 돌아선 이후 올 1분기에는 -2.4%(전분기 대비)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2분기에 -0.8%로 하락폭이 좁혀진 데 이어 3분기부터는 플러스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폴 도노번 UBS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경제는 이미 바닥을 통과했으며 3분기에는 0.2%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며 "일각에선 예상치를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 기대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연초만 해도 디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컸으나 이 또한 분위기가 바뀌었다. 도노번 이코노미스트는 "물가가 하락하자 소비가 늘어나는 '굿(good) 디플레' 현상이 나타났다"며 "10년 전 일본에서처럼 물가가 계속 하락할 것을 우려해 소비를 미뤄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는 '배드(bad) 디플레'는 적어도 영국에선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시장도 급속히 좋아지고 있다. 영국 주가지수인 FTSE100은 올 들어 저점 대비 40% 정도 올랐다. 부동산도 2007년 10월을 정점으로 올해 2월까지 20% 이상 하락했지만 지금은 바닥에 비해 4.5% 상승했다. 더구나 RICS(영국왕립평가협회) 조사나 NHPI(국가주택가격지표) 등 각종 부동산 관련 지표를 보면 최근 들어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영국 부동산등기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 주택가격은 전달에 비해 1.7% 오르며 최근 5년 만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사이먼 헤이즈 바클레이즈 캐피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아직까지 가계 부채 증가로 개인들의 주택담보대출 여력이 많지 않아 부동산 시장의 급속한 회복이 계속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영국 경제가 이처럼 좋아진 데는 정부의 재정 투입 효과가 컸다. 영국 정부는 작년 하반기 이후 금융구제 플랜에 따라 2060억파운드(3352억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은행과 모기지 회사들에 투입했다. 주택 버블 붕괴에 따른 부실 자산 증가와 해외 투자 손실로 이중고를 겪던 금융회사들을 신속하게 지원하기 위한 조치였다. 영국 중앙은행도 정책금리를 작년 10월 연 5.0%에서 올 3월 0.5%까지 낮췄다. 덕분에 금융시스템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자산시장도 회복되면서 영국 경제의 두 가지 암초 중 하나였던 금융부실은 터널을 벗어나는 양상이다.
그러나 재정 악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향후 경제 전망을 여전히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재정적자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9%로 작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은 그리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정부의 부채 수준은 아직도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며 경제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사이먼 헤이즈 이코노미스트)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구제금융을 받은 민간 은행들이 실적이 좋아지면서 정부 빚을 속속 갚고 있다. 로이즈뱅킹그룹의 경우 40억파운드에 달하는 정부 발행 우선주를 상환하기로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최고치인 7.8%의 높은 실업률,실업보험 급증에 따른 정부의 추가 비용 지출 등이 영국 경제의 또 다른 위기 요인으로 남아 있는 만큼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런던=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