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외곽에 있는 산업복합단지 '비콘코트(Beacon Court)'.아일랜드 정부가 외국의 금융 및 정보기술(IT) 기업 유치를 위해 만든 이곳은 최고급 시설과 저렴한 임대료로 많은 기업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무실 절반 가까이가 비어 있다. 상당수가 금융위기로 임대료로 못 낼 만큼 사업이 어려워져 떠난 탓이다. 더블린 중심을 흐르는 리피 강변에 있는 국제금융센터(IFSC)도 사정은 비슷하다. 1980년대 말 고급 인력의 해외 이탈을 막고 더블린을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취지 아래 세워진 금융 클러스터인 이곳은 한때 다국적 금융회사들이 속속 입주하며 지난 수년간 금융 호황기를 만끽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해고자가 속출했고 지금은 싸늘한 기운만 감돌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성공적인 외자 유치 덕에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켈틱 타이거(Celtic Tiger)'로 불렸던 아일랜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급격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5년 만에 마이너스(-2.3%)로 곤두박질쳤고 올해는 -7%대의 하락률이 예고되고 있다. 실업률도 지난해 6.4%로 올라간 데 이어 올 연말에는 14%대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게 각종 기관의 전망이다. 연초에는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져 외국계 자본이 이탈하면서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현지 유력 신문인 파이낸스더블린의 케네디 오브라이언 편집장은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수출의존형 소규모 개방경제의 한계이고,다른 하나는 부동산 버블에 따른 후유증이라는 것이다. 그는 "첫 번째 이유가 외부 변수라면 두 번째는 내부 변수"라며 "내부 변수가 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아일랜드 부동산 시장은 2007년 말을 정점으로 버블이 터지면서 최근까지 고점 대비 45%가량 하락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개발업체가 부도가 났고 여기에 대출해준 은행들은 고스란히 부실을 떠안았다. 가계부채도 급속도로 증가했다. 작년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96.7%로 네덜란드(106.2%)에 이어 유로존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부동산 침체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데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급한 대로 은행 부실자산을 인수하기 위해 국가자산관리위원회(NAMA)로 불리는 일종의 '배드뱅크' 설립 법안을 3주 전 발표했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 은행을 지원한다는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어 의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 위기 원인은 세계 최저 법인세율(12.5%) 등 당근책으로 유치한 글로벌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맞아 휘청거리면서 내수마저 침체해 소규모 개방경제의 허약함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은 경영난을 이유로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일부 사업 부문을 철수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델컴퓨터가 아일랜드 공장을 철수한다고 발표해 분위기를 더욱 차갑게 하고 있다.

물론 낙관론도 있다. 아일랜드계 은행인 얼스터뱅크의 시몬 베리 이코노미스트는 "아일랜드의 주요 무역 파트너인 영국 미국 등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무역수지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경제도 조금씩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국가경제 · 무역 · 정보통신 정책자문위원회의 에오인 간 위원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세율과 고학력의 풍부한 노동력,고도의 연구 · 개발(R&D) 능력 등에서 여전히 장점이 크다"고 말했다.

더블린(아일랜드)=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