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L사는 2007년 말 관할 세무서를 상대로 법인세부과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다. 2003년 서울지방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한다며 재무제표 및 감사보고서,출자흐름도 등에 대한 조사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2년 뒤 다시 같은 건에 대해 2차 세무조사를 실시해 6억여원의 법인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세기본법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복세무조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최근 "법인세 부과를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려 L사의 손을 들어줬다.

#사례 2.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지던 지난달 23일 한 보수단체 회원들은 "김 전 대통령 국장을 취소하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현직이 아닌 전직 대통령에 대해 국장을 실시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인 만큼 이를 허용한 것은 행정안전부의 직권남용이라는 취지였다.


정부 등 행정기관을 상대로 한 각종 행정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2004년 5024건에 불과했던 행정소송 건수가 2005년 5424건,2006년 6103건,2007년 6555건,2008년 6976건 등으로 급증추세다. 올해도 7월 말 현재 벌써 전년도의 61%가 넘는 4268건이 제기된 상태며 연말이 되면 작년 건수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법원은 일반 상식과 동떨어진 주장을 내세우는 황당한 소송과 잘못된 행정처분이나 관행을 깨는 소송이 특히 많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권리의식 높아지면서 소송에 적극적

법원은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것이 행정소송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동안은 법을 잘 몰라 행정기관의 시책을 무조건 따랐지만 이젠 행정기관의 잘못된 관행과 불법적인 절차에 대해 소송으로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재개발지역구역에선 개발 반대파들은 조직적으로 조합설립인가 관리처분 등의 무효소송을 제기해 잇달아 승소하고 있다. 공람통보 등 법에서 정하고 있는 절차를 지키지 않았거나 접도율 등 법에서 정한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는데도 구청들이 관행적으로 인허가를 내준 까닭이다. 특히 분담금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개발 조합설립 인가를 내준 경우가 많아 관련 소송이 걸리면 행정관청이 거의 예외 없이 패소하고 있다.

도로 공원 신도시 등의 건설을 위한 토지보상 분야에서도 원주민들의 소송과 승소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신도시 개발주체인 토지공사 등은 지장물 조사를 할 때 사전통지 등의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조사의 불법성을 알아챈 원주민들이 최근 들어 소송을 통해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의 최의호 판사는 "행정기관들이 법과 원칙에 맞지 않게 업무수행을 하거나 법 해석을 잘못해 소송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며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신장되면서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참지 않으려는 욕구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한 판사도 "일본의 경우 행정소송이 우리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고 일반인이 승소하는 경우도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이는 행정기관이 비록 사업이 늦어지더라도 법에서 정한 절차를 그대로 지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감정적 묻지마 소송도 급증

국가나 행정기관의 정책이나 결정에 대해 불만을 느껴 감정적으로 소송을 내는 경우도 많다. 특정 정당의 등록을 무효화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판사나 검사를 상대로 한 묻지마 소송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판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 가운데 원고승소 판결을 받은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전부 청구기각 또는 각하된 상태다. 서울행정법원의 이경구 부장판사는 "최근에는 공무원의 위법한 업무로 손해를 봤다며 공무원을 사형시켜 달라거나 판사의 불공정 재판으로 피해를 입었다면서 판사의 업무정지를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행정소송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되는 소송 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1~2%였던 행정소송 각하 비율이 지난해 4~5%까지 증가했다. 서울행정법원 송민경 판사는 "법이나 행정기관을 우습게 보는 풍조가 만연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