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솔직함이 멈추는곳에서 배신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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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기마르시아 교보 AXA손보사장
족발ㆍ막걸리로 소통하는 '碧眼의 CEO'
족발ㆍ막걸리로 소통하는 '碧眼의 CEO'
벽안(碧眼)의 프랑스인 한 명이 2006년 초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서울의 한 호텔에 짐을 푼 그는 며칠간 교보생명과 삼성화재,동부화재 등 한국 유수의 보험사를 바쁘게 찾아다니며 경영진을 만나고 여러 가지 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당시 한국 보험사 실무자들로부터 '의심'을 받기도 했다. 세계적인 보험사의 일본법인 회장이라고 하는데 진짜인지를 묻는 전화가 본사 쪽으로 걸려왔다고 한다. 비서도,휴대폰도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는 그의 행동이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온 지 1년도 안 돼 교보생명으로부터 교보자동차보험을 인수했다. 인수 · 합병(M&A) 의사 타진에서부터 매각 계약 체결,인수 작업까지 모든 일을 직접 주도한 사람이 기 마르시아 교보AXA손해보험 사장(60)이다.
그는 1977년 몽펠리에대에서 산업생화학 박사를 딴 뒤 제약사인 사노피에 연구원으로 입사했으나 얼마 안 돼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노피가 일본법인 설립에 나서자 자원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30여년을 살았으니 나머지 인생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후 24년을 일본에서 살면서 직원 20여명 규모로 출발한 일본 사노피제약을 2000여명 규모로 키웠다.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 사노피제약의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새로운 프로필을 쓰겠다고 작정을 했다. 1998년 신규 진출한 일본 AXA손해보험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그때가 쉰 살이었다.
마르시아 사장은 "매일매일을 똑같이 살 순 없지 않느냐"며 "제약사에선 연구원부터 영업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고 열정을 가지고 도전을 해 왔다"고 말했다. 일본 AXA손해보험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고 그는 2006년 4월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을 일본에서 이룬 그가 선택한 새로운 도전이 한국 시장 진출이었다. 일본에서 일하다 보니 자동차가 2000만대가 넘는 한국 시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프랑스 본사에 한국 진출을 제의해 성사시켰다.
한국에서 교보AXA손해보험 사장이 된 그는 지난 2년 동안 업계 최초로 1 대 1 보상 서비스,GPS 위치추적 서비스를 시작하고 멤버십 서비스를 도입했다. 지난해 매출 5423억원,순이익 86억원을 올려 회사는 4년 만에,그로서는 취임 2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외국인을 꺼리고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 일본에서 마르시아 사장이 20여년간 승승장구한 이유는 활달하고 진취적인 성격으로 '소통과 대화'를 앞세우는 경영을 해온 때문이다. 마르시아 사장은 '특별한 경영기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소와 경청,절대 혼자 결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여러 명이 함께 뛰는 럭비와 같은 것인데 사장이 혼자 결정한다면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럭비의 스크럼처럼 좋은 사람에게 둘러싸이고 솔직한 의견을 주고받아야 바람직한 의사결정이 나온다는 얘기다. 마르시아 사장은 이 때문에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이 남긴 '솔직함이 멈추는 곳에서 배신이 시작된다'는 말을 사무실에 액자로 걸어놓고 늘 되뇌이곤 한다.
그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직원들과 실시간 채팅(CEO채팅방)을 하고 폭탄주를 앞세워 직원들과 소통했다. 1년에 몇 차례씩 부산 대구 등 전국 콜센터를 돌면서 회사 전반을 설명하는 전 직원 모임 때 폭탄주를 함께 마시곤 했다. 최근엔 막걸리도 추가됐다. 안주로는 마르시아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족발이 주로 나온다. 그는 "위스키만 마시면 두통이 있지만 폭탄주는 괜찮다"고 했다. 그런 마르시아 사장 앞에서 교보AXA손보 사람들이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을 알기 위해 주말에 혼자 거리를 걸어다니는 일도 잦다. 최근엔 시계를 사기 위해 집이 있는 이태원동에서 압구정동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한국의 역사와 남북문제,문화 등을 직원들과 함께 공부하기도 한다.
그의 앞에는 새로운 과제가 남아 있다. 교보와의 계약 만료로 올해 11월부터 사명을 'AXA손해보험'으로 바꿔야 한다. AXA는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사다. 작년 한 해만 해도 56개국에서 8000만명 고객을 대상으로 매출 163조원을 올렸지만 한국에서 인지도는 아직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마르시아 사장은 "나에게 위기는 기회다. 위기가 있으면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발전하게 된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올해 환갑이지만 늘 그랬듯이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당장은 AXA손해보험을 더 키워 AXA그룹의 아시아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국의 온라인 자동차보험시장 진출은 그 과정에서 이뤄내야 할 일 중 하나다. 먼 훗날 은퇴한다면 아프리카에 가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소망도 갖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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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마르시아 사장은…
◇1949년 튀니지 스팍스 출생
◇1977년 프랑스 몽펠리에대 산업생화학 박사
◇1986년 일본 사노피제약 사장
◇1997년 일본 입생로랑(향수) 사장
◇1998년 일본 AXA손해보험 사장
◇2007년 일본 AXA손해보험 회장
◇2007년 5월 교보AXA자동차보험 대표이사 사장(현)
그는 당시 한국 보험사 실무자들로부터 '의심'을 받기도 했다. 세계적인 보험사의 일본법인 회장이라고 하는데 진짜인지를 묻는 전화가 본사 쪽으로 걸려왔다고 한다. 비서도,휴대폰도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는 그의 행동이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온 지 1년도 안 돼 교보생명으로부터 교보자동차보험을 인수했다. 인수 · 합병(M&A) 의사 타진에서부터 매각 계약 체결,인수 작업까지 모든 일을 직접 주도한 사람이 기 마르시아 교보AXA손해보험 사장(60)이다.
그는 1977년 몽펠리에대에서 산업생화학 박사를 딴 뒤 제약사인 사노피에 연구원으로 입사했으나 얼마 안 돼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노피가 일본법인 설립에 나서자 자원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30여년을 살았으니 나머지 인생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후 24년을 일본에서 살면서 직원 20여명 규모로 출발한 일본 사노피제약을 2000여명 규모로 키웠다.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 사노피제약의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새로운 프로필을 쓰겠다고 작정을 했다. 1998년 신규 진출한 일본 AXA손해보험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그때가 쉰 살이었다.
마르시아 사장은 "매일매일을 똑같이 살 순 없지 않느냐"며 "제약사에선 연구원부터 영업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고 열정을 가지고 도전을 해 왔다"고 말했다. 일본 AXA손해보험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고 그는 2006년 4월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을 일본에서 이룬 그가 선택한 새로운 도전이 한국 시장 진출이었다. 일본에서 일하다 보니 자동차가 2000만대가 넘는 한국 시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프랑스 본사에 한국 진출을 제의해 성사시켰다.
한국에서 교보AXA손해보험 사장이 된 그는 지난 2년 동안 업계 최초로 1 대 1 보상 서비스,GPS 위치추적 서비스를 시작하고 멤버십 서비스를 도입했다. 지난해 매출 5423억원,순이익 86억원을 올려 회사는 4년 만에,그로서는 취임 2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외국인을 꺼리고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 일본에서 마르시아 사장이 20여년간 승승장구한 이유는 활달하고 진취적인 성격으로 '소통과 대화'를 앞세우는 경영을 해온 때문이다. 마르시아 사장은 '특별한 경영기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소와 경청,절대 혼자 결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여러 명이 함께 뛰는 럭비와 같은 것인데 사장이 혼자 결정한다면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럭비의 스크럼처럼 좋은 사람에게 둘러싸이고 솔직한 의견을 주고받아야 바람직한 의사결정이 나온다는 얘기다. 마르시아 사장은 이 때문에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이 남긴 '솔직함이 멈추는 곳에서 배신이 시작된다'는 말을 사무실에 액자로 걸어놓고 늘 되뇌이곤 한다.
그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직원들과 실시간 채팅(CEO채팅방)을 하고 폭탄주를 앞세워 직원들과 소통했다. 1년에 몇 차례씩 부산 대구 등 전국 콜센터를 돌면서 회사 전반을 설명하는 전 직원 모임 때 폭탄주를 함께 마시곤 했다. 최근엔 막걸리도 추가됐다. 안주로는 마르시아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족발이 주로 나온다. 그는 "위스키만 마시면 두통이 있지만 폭탄주는 괜찮다"고 했다. 그런 마르시아 사장 앞에서 교보AXA손보 사람들이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을 알기 위해 주말에 혼자 거리를 걸어다니는 일도 잦다. 최근엔 시계를 사기 위해 집이 있는 이태원동에서 압구정동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한국의 역사와 남북문제,문화 등을 직원들과 함께 공부하기도 한다.
그의 앞에는 새로운 과제가 남아 있다. 교보와의 계약 만료로 올해 11월부터 사명을 'AXA손해보험'으로 바꿔야 한다. AXA는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사다. 작년 한 해만 해도 56개국에서 8000만명 고객을 대상으로 매출 163조원을 올렸지만 한국에서 인지도는 아직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마르시아 사장은 "나에게 위기는 기회다. 위기가 있으면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발전하게 된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올해 환갑이지만 늘 그랬듯이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당장은 AXA손해보험을 더 키워 AXA그룹의 아시아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국의 온라인 자동차보험시장 진출은 그 과정에서 이뤄내야 할 일 중 하나다. 먼 훗날 은퇴한다면 아프리카에 가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소망도 갖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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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마르시아 사장은…
◇1949년 튀니지 스팍스 출생
◇1977년 프랑스 몽펠리에대 산업생화학 박사
◇1986년 일본 사노피제약 사장
◇1997년 일본 입생로랑(향수) 사장
◇1998년 일본 AXA손해보험 사장
◇2007년 일본 AXA손해보험 회장
◇2007년 5월 교보AXA자동차보험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