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주가조작 논란을 일으켰던 영국계 연기금 운용사인 헤르메스(Hermes)가 5년 만에 국내 증시에서 투자를 재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헤르메스는 당시 삼성물산 지분 5%를 매수한 뒤 적대적 인수 · 합병(M&A) 가능성을 언급한 직후 보유 지분을 전량 털어 주가조작 논란을 일으켰다가 무죄가 확정됐던 회사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헤르메스는 최근 장내 매수를 통해 유가증권 상장사인 CJ CGV 지분 5.04%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가 국내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한 것은 삼성물산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CJ CGV 관계자는 "지난 5월께 헤르메스 측에서 회사를 방문한 이후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회사는 대주주인 CJ 지분이 40%에 달해 헤르메스가 순수하게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취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르메스는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면서 불공정거래 혐의를 완전히 벗은 데다 금융위기 이후 국내 증시의 투자 매력이 높아지자 국내 투자를 재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글로벌 연기금 펀드를 비롯한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대거 매입하는 상황에서 헤르메스 역시 자산 배분 차원에서 국내 증시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CJ CGV 이외에 지분이 5%가 넘지 않는 종목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헤르메스는 영국의 수백만 연금수령자를 대리해 자금을 운용하는 회사로, 최대 투자자인 영국 브리티시텔레콤 기업연금(BTPS)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이 회사는 2003년 6월 LS산전 지분 7.04%를 취득했다고 공시하면서 국내 증시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현대해상 삼성물산 한솔제지 현대산업개발 솔본 등의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사들이며 투자 규모를 늘려오다 2004년 말 삼성물산 주가 조작 논란 이후 보유 주식을 팔기만 했을 뿐 거의 활동이 없었다.

삼성물산 사건은 외국계 운용사의 첫 주가조작 혐의라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04년 3월 삼성물산 지분 5%를 취득했다고 신고한 헤르메스는 같은 해 12월 국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물산에 대한 적대적 M&A 가능성을 내비친 직후 지분을 전량 팔아 불공정거래 혐의를 받았다. 이듬해 증권선물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했고 헤르메스는 2006년 초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기소돼 정식재판에 회부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헤르메스 펀드매니저의 M&A 언급은 가정적 · 원론적 사실을 언급한 것에 불과하고,주식 처분을 결정하고 매도한 사정을 종합해 보면 인터뷰 보도에 위계를 사용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헤르메스는 지난 6월 국내에서 책임투자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외국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가입하기도 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를 늘릴 것으로 기대하고 이 자금의 일부 운용을 맡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