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일본의 차기 총리인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8월30일 총선 직전 일본의 보이스(Voice)라는 월간지 9월호(8월10일 발매)에 특별 기고한 ‘나의 정치 철학’이란 글의 전문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이 글의 영문본을 요약해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이후 미국과 일본내 보수진영에선 하토야마 대표가 ‘반미주의자’라는 비판이 고조됐고, 하토야마 대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미-일관계에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아래 글은 하토야마 대표의 ‘나의 정치철학’이란 글을 민주당이 한글로 번역한 전문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을 싣는다. 미국 언론 등이 문제 삼고 있는 표현과 문장은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편집자


나의 政治哲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

당료파 하토야마 이치로의 기치

현대의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애(愛)」인데, 이것은 보통 영어로 love를 뜻한다. 그 때문에 내가「우애(友愛)」를 말하면 다수의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나를 유약하게 보는 듯 하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우애」는 이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의 슬로건인 「자유•평등•박애」에서 말하는 박애(fraternity)를 가리킨다.

나의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께서 쿠덴호프 칼레르기(Nikolaus von Coudenhove-Kalergi)의 저서를 번역해 출판했을 때, 이 후레터니티를 박애가 아니라 우애라고 번역했다. 따라서 우애는 유약한 개념이 아니라 혁명의 기치를 수반한 전투적 개념인 것이다.

쿠덴호프 칼레르기는 지금부터 85년 전의 타이쇼(大正) 12년(1923년) 『범유럽(PAN-EUROPA)』이라는 저서를 간행해 이것을 통해 오늘날 EU로 연결되는 범유럽운동의 제창자가 되었다. 그는 일본 공사를 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귀족(하인리히 쿠덴호프 칼레르기 백작과 麻布(아자부)의 골동품상의 딸 아오야마 미츠코의 차남으로서 태어나 栄次郎(에이지로)라고 하는 일본명도 가지고 있었다.

칼레르기는 쇼와(昭和) 10년(1935년)에 『Totalitarian State Against Man (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 ;인간을 거스르는 전체주의 국가)』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이 책은 소련 공산주의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격렬한 비판과 그들의 진출을 허락한 자본주의의 방종(放縱)함에 대한 심각한 반성으로 가득차있었다.

칼레르기는, 「자유」야말로 인간 존엄의 기초이며, 지상의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유를 보장하는 도구로서 사유재산제도를 옹호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가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이에 대한 반발로 「평등」에의 희구가 공산주의를 태동시키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자에 대항하는 국가사회주의가 출범하는 것에 대해 깊이 우려했다.

그는 "우애(友愛)가 수반되지 않으면, 자유는 무정부상태의 혼란을 초래하고 평등은 폭정을 동반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로지 평등만을 추구하는 전체주의도, 방종에 빠진 자본주의도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켜 본래 목적이어야 할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킨다고 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와 평등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근본주의에 빠지면 그것이 가져오는 참화는 헤아릴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게 균형을 도모하는 이념이 필요하고, 칼레르기는 그것을 「우애」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의 저서「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은 "인간은 목적이며 수단은 아니다. 국가는 수단이며 목적은 아니다"라는 서두로 시작된다. 칼레르기가 이 책을 구상하고 있던 무렵, 두 개의 전체주의가 유럽을 지배해, 조국 오스트리아는 히틀러에 의한 병합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는 유럽전역을 돌아다니며, 범유럽을 주장하였고, 반(反)히틀러, 반(反)스탈린운동을 고취시키고 다녔다. 그러나 그러한 분투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는 나치에 병합되었다. 그는 실의 속에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영화「카사블랑카」는, 칼레르기의 도피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칼레르기가 설명하는 「우애혁명」은 그가 동시대에 직면한, 좌우의 전체주의와의 격렬한 싸움을 지탱해온 전투이론이었던 것이다.

2차대전 후, 수상이 되기 직전 공직에서 추방되어 낭인이 된 하토야마 이치로는 칼레르기의 서적을 읽어나가던 중, 특히 공감을 느낀「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을 번역해 「자유와 인생」이라는 서명(書名)으로 출판했다. 날카로운 공산주의 비판자이며, 군부 주도의 계획(통제)경제에 반대한 하토야마 이치로에게 이 책은 전후 일본에 휘몰아쳐진 마르크스주의 세력(사회, 공산 양당이나 노동 운동)의 공세에 저항해 건전한 의회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이론체계로 보였을 것이다.

하토야마 이치로는, 한편으로는 기세를 더해가는 사회당과 공산당의 양당에 대항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관료파 요시다 정권을 타도해, 당료파 하토야마 정권을 수립하는 기치로서 「우애」를 내걸었다. 그의 펜(무기)이 되는「우애 청년동지회강령(쇼와(소화(昭和) 28년(1953년)」 은 그것의 단적인 표현이다. 여기서

그는 "우리는 자유주의의 깃발 아래서 우애 혁명에 투신 해, 좌우 양 극단적인 사상을 배제하고, 건전하고 명랑한 민주 사회의 실현과 자주 독립의 문화 국가건설에 매진 한다"과 말했다.

그의「우애」의 이념은, 전후 보수정당의 본류로서 계속 유지되어 1960년 「미일안보조약」과 관련된 혼란을 수습하고, 자민당의 노사협조정책으로 자리잡아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기초가 되었다. 그것의 상징이 바로 쇼와(昭和) 40년(1965년)에 강령적 문서로서 작성된 「자민당 기본헌장」이다.

강령의 제1장은 「인간의 존중」이라는 제목하에 "인간은 그 존재가 고귀한 것이어, 항상 그 자체가 목적이며, 결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노동운동과의 융화를 구가한 「자민당 노동헌장」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 그것은 분명하게, 칼레르기의 저서로부터 인용한 것이며, 하토야마 이치로의 우애론에 영향을 받은 것일 것이다. 이 두 개의 헌장은 하토야마, 이시바시 내각 수립에 공헌하였고, 이케다 내각 때 노동부 장관으로서 일본에서 노사협조노선을 확립한 이시다 히로히데에 의해서 기초된 것이다.

자민당 역할의 종결과 민주당 창당선언

전후 자민당이 내외의 사회주의 진영과 대치해, 일본의 부흥과 고도 경제성장의 달성에 힘쓴것은 큰 공적이며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에도 경제성장 자체가 국가목표이어야 할 것 같은 타성에 빠져, 변화하는 시대환경 속에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을 목표로 하는 정책으로 전환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 어떤 면에서 정관계의 유착이 가져오는 정치부패가 자민당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냉전이 끝났을 때 고도성장만을 떠받쳐온 자민당의 역사적 역할도 끝나, 새로운 책임세력이 요구되고 있음을 통감했다. 그래서 조부가 창당한 자민당을 탈당해, 신당사끼가게(선구)의 창당에 참가한 뒤 당수가 되어 민주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1996년 9월 11일 「(구) 민주당」창당. 나는 「창당선언」에서 "우리가 지금부터 사회의 근저에 자리잡게 하고 싶은 것은 ‘우애’정신이다. 자유는 약육강식의 방만에 빠지기 쉽고, 평등은 ‘튀어나온 못은 정을맞는다’는 식의 잘못된 평등으로까지 타락 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자유와 평등을 극복하는 것이 ‘우애’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00년 동안 너무나 경시되어 왔다. 20세기까지의 근대국가는, 사람들에게 국민의 지위를 부여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인간을 ‘한 무더기’라고만 평가하는 대중(mass)으로 밖에 취급하지 않았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개성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갖고, 또 그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고 하는 「개인(個)의 자립」 원리뿐만 아니라 그러한 서로의 자립성과 이질성을 상호 존중하고 서로 공감하여 일치점을 추구해 협동해야 한다고 하는「타인(他)과의 공생」의 원리를 중시하고 싶다. 그러한 자립과 공생의 원리는 일본 사회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 만이 아니라 일본과 세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도 똑같이 관철되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상적인 조화사회, 계급투쟁 없는 유토피아 실현을 꿈꾸었던 정치가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実篤)는 "너는 너, 나는 나다. 그러니까 더 사이 좋게 (지내자)"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있다. 「우애」란, 확실히 이러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자유’나 ‘평등’이 시대환경과 함께 그 표현과 내용을 진화시켜 가듯이, 인간의 존엄을 희구하는 「우애」라는 단어도 시대환경과 더불어 진화해 나간다. 나는 칼레르기나 조부 이치로가 싸워왔던 전체주의국가의 종언(終焉)을 지켜보면서 「우애」를 「자립과 공생의 원리」라고 재정의했다.

그날로부터 13년이 지났다. 그 시기 동안 냉전 후 일본은 미국발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하의 시장원리주의에 계속 농락당했다. 최고의 지상가치이어야 할「자유」, 그「자유의 경제적 형식」인 자본주의를 원리적으로 추구할 때, 인간은 목적은 아니고 수단으로 전락하여 그 존엄을 잃는다.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는 그러한 본질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도의(道義)와 절도(節度)를 상실한 금융자본주의, 시장지상주의를 어떻게 통제하며 국민경제와 국민 생활을 지켜 갈 수 있을까?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이러한 시기를 맞이하여 나는 일찍이 칼레르기가 자유의 본질에 내재 하는 위험을 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서의「우애」를 평가한 것을 재차 상기하고 다시 한 번 「우애의 기치」를 내걸고자 결의했다. 2009년 5월 16일 밤, 민주당대표 선거에 임하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선두에 서서 동지 여러분과 함께 하나가 되어 난국을 타개해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 「우애사회(友愛社會)」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정권 교체를 이루고 싶다"고. 나에게 있어서 「우애」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의 방향을 판단하는 나침반이며, 정책을 결정할 때의 판단 기준이다. 그리고, 우리가 목표로 하는 「자립과 공생의 시대」를 지지하는 시대 정신이라고도 믿고 있다.

쇠약한 공(公)의 영역을 부흥

현 시점에서 「우애」는 글로벌화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과도함을 바로잡아 전통적으로 키워져 온 국민경제와의 조정을 목표로 하는 이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시장 지상주의로부터 국민의 생활이나 안전을 지키는 정책으로 전환해 공생의 경제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번 세계경제 위기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추진해 온 시장원리주의, 금융자본주의의 파탄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시장원리주의나 금융 자본주의는 글로벌 이코노미라든지 글로벌리제이션, 글로벌리즘 등으로 일컬어져 왔다.

미국적인 자유시장경제가 보편적으로 이상적인 경제질서이며 모든 국가들은 각각의 국민경제의 전통이나 규제를 고쳐 경제사회의 구조를 글로벌 스탠다드(실은 아메리칸 스탠다드)에 맞추어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하는 사조였다.

일본 국내에서도, 이 글로벌리즘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모두를 시장에 맡기는 방식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과 이것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사회안전망(safety net)을 충실하게 하고 국민경제적인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로 나누어졌다. 고이즈미 정권 이래의 자민당은 전자이며, 우리 민주당은 후자의 입장이었다.

각국의 경제질서(국민경제)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완성되어 온 것으로 그 나라의 전통, 관습, 국민 생활의 실태를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의 국민경제는 역사, 전통, 관습, 경제 규모나 발전단계 등에따라 너무 다양하다. 글로벌리즘은 그러한 경제 외적 제가치나 환경 문제나 자원 제약 등을 모두 무시하고 추진되었다. 그 결과 작은 나라 중에서는, 국민경제가 큰 타격을 입어 전통적 산업이 괴멸된 경우도 있었다.

자본이나 생산수단은 아주 쉽게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간단하게 이동할 수 없다. 시장의 논리에서 ‘사람’은 ‘인건비’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의 세상에서는 그 ‘사람’이 지역공동체를 지탱하고 생활이나 전통이나 문화를 체현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은 그러한 공동체 안에서 일이나 역할을 얻고 가정을 영위해 가는 가운데 보존된다.

냉전 후 오늘까지의 일본 사회의 변모를 돌아보면, 글로벌 이코노미가 국민경제를 파괴하고 시장 지상주의가 사회를 파괴해 온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정 민영화는, 긴 역사를 가지는 우체국과 그것을 지탱해 온 사람들의 지역사회에서의 전통적 역할을 너무 경시하고 우체국이 가지는 경제 외적 가치나 공동체적 가치를 무시하고,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 일도양단해 버렸다.

농업이나 환경 의료 등,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관계되는 분야의 경제활동을 간단하게 글로벌리즘의 흐름 안에 내던지는 정책은 「우애」의 이념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오히려 생명의 안전이나 생활의 안정과 관련되는 규칙이나 규제는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

앞으로의 정치의 책임은 글로벌리즘이 석권하는 가운데 무시되었던 경제 외적인 제가치에 관심을 가져 사람과 사람과의 유대를 재생시키고, 자연이나 환경에의 배려, 복지나 의료제도의 재구축, 교육이나 아이를 기르는 환경의 충실, 빈부격차의 시정 등을통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정돈해 가는 것’이다.

요즘에 와서 일본의 전통적인 공공의 영역이 쇠약해져 사람들로부터 서로의 정(情)도 없어졌고 공공심도 박약하게 되었다. 현대의 경제사회의 활동에는 「官」, 「民」, 「公」, 「私」의 구별이 있다. 官은 행정, 民은 기업, 私는 개인이나 가정이다. 공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마을회의 활동이나 지금의 NPO 활동과 같은 상호 부조적인 활동을 가리킨다. 경제사회가 고도화 해 복잡해지면 질수록 행정이나 기업이나 개인에게는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커져 간다. 경제 선진국일수록 NPO 등의 비영리 활동이 큰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공생」의 기반이기도 하다. 그러한 활동은 GDP로는 환산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가 진정 풍족한 사회를 만들려고 할 때 이러한 공공 영역의 비영리적 활동, 시민활동, 사회활동의 층이 얼마나 두터운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우애」의 정치는 쇠약한 일본의 「공」의 영역을 부흥시키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공의 영역을 창조해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지원해 나가며, 그리고 사람과 사람과의 유대관계(정)을 되찾아 사람과 사람이 서로 돕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보람으로 느끼는 사회, 그러한 ‘공생의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정의 위기는 확실히 심각하다. 그러나「우애」의 정치는, 재정의 재건과 복지제도의 재구축을 양립시키는 길을 신중하고 착실하게 해나갈 것을 목표로 한다. 재정재건을 사회보장정책의 일률적 재단에 의해서 달성하자고 한다든가, 또 소비세 증세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달성하려는 재무성 주도의 재정재건론에는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재정의 위기는 오랜 세월 동안 자민당 정권의 실정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관료주도의 중앙집권 정치와 그 아래에서의 무차별살포 정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글로벌리즘 신앙이 낳은 사회안전망(safety net)의 파탄과 격차의 확대, 정관계 유착의 정치로 인한 정부에 대한 신뢰상실 등을 포함한 일본의 경제사회의 전체적 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재정 위기의 극복은 우리가 이 나라의 모습을 지역 주권국가로 바꾸어 철저한 재무행정개혁을 단행해, 연금을 필두로 하여 사회보장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것, 즉 정치의 근본적인 재건의 노력 없이는 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지역 주권국가의 확립

나는 당대표 선거의 입후보 연설에서 “내가 가장 주력하고 싶은 정책은 ‘중앙집권 국가인 현재 나라(일본)’의 모습을 ‘지역 주권의 국가’로 변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주장은 13년 전의 구민주당 결당 선언에도 주장한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작은 중앙정부•국회와 큰 권한을 가진 효율적인 지방 정부에 의한 ‘지방 분권•지역 주권국가’를 실현하여 그 아래에서, 시민참가•지역 공조형에 충실한 복지와 미래에 재정적자를 미루지 않는 재정•의료•연금 제도를 양립시켜 간다”라고 역설했다. 쿠덴호프 칼레르기의 「우애 혁명」(『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 제12장) 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애주의의 정치적 필수 조건은 연방 조직이며 그것은 실로
개인으로부터 국가를 만들어 내는 유기적 방법인 것이다. 인간으로부터 우주에 이르는 길은 동심원을 통해서 이끌린다. 즉, 인간이 가족을 만들고, 가족이 자치체(自治体, commune)를 만들고, 자치체가 군(郡, canton)을 만들어내며, 또한 군이 주(州, state)를 만들고, 주가 대륙을 만들어내며, 대륙이 지구를 만들고, 지구가 태양계를 만들어, 태양계가 결국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칼레르기의 말을 지금의 말로 말하면「보완성의 원리」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우애」의 논리로부터 유추되는 현대적 정책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의 글로벌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현실이다. 그러나 경제적 통합이 진행되는 EU에서는, 한편으로 지역화(로컬화)라고도 해야 할 흐름도 현저하다. 벨기에의 연방화나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 독립 등은 그 한 예이다.

글로벌화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전통이나 문화의 기반으로서 국가 혹은 지역의 독자성을 어떻게 유지해 갈까. 그것은 EU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일본에 있어서도 큰 과제이다. 글로벌화와 로컬화라고 하는 두 개의 상반되는 시대의 요청에 대한 화답으로 EU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나 유럽 지방자치 헌장에서 「보완성의 원리」를 내걸었다.

보완성의 원리는 오늘날 단지 기초자치체 우선의 원칙이라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와 초국가 기관과의 관계에까지 원용되는 원칙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완성의 원리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개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으로 해결한다. 개인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가정이 도움을 준다. 그리고 가정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지역사회나 NPO가 돕는다. 이렇게 해도 해결할 수 없을 때에 비로소 행정부서가 처음으로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기 자치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기초자치체에서 하게 하고, 기초자치체가 할 수 없는 것만을 광역자치체가 한다. 광역자치체에서도 할 수 없는 것, 예를 들어 외교, 방위, 거시경제정책의 결정 등과 같은 것만을 중앙정부가 담당한다. 그리고 다음의 단계로서 통화의 발행권 등 국가주권의 일부도 EU와 같은 국제기구에 이양한다.

보완성의 원리는 실제로 분권정책으로서 기초자치체 중시의 분권정책이 된다. 우리가 ‘우애의 현대화’를 모색할 때 필연적으로 보완성의 원리에 입각한「지역 주권국가」의 확립에 영향을 미친다.

도주제(道州制, 일본의 광역 행정구역)의 옳고 그름을 포함하여 향후의 일본지방제도를 개혁함에 있어서는 전통이나 문화의 기반으로서 자치체의 규모는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주민에 의한 자치가 유효하게 기능하는 자치체의 규모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라고 하는 근본적인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민주당 대표선거 때 이렇게 연설했다. “나라의 역할을 외교•방위, 재정•금융, 자원•에너지, 환경 등으로 한정하고 국민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권한, 재원, 인재는 기초자치체에 이양해, 그 지역의 판단과 책임에 맡기고 결정하게 하는 시스템으로 변혁할 것입니다. 국가 보조금은 폐지해 지방에 자주재원으로서 일괄 교부합니다. 즉 국가(중앙정부)와 지역의 관계를 현재의 실질적인 상하관계로부터 병렬의 관계, 역할 분담의 관계로 바꾸어 줄 것입니다. 이러한 변혁을 통해 나라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지역의 실정에 따른 꼼꼼한 생활인의 입장에 선 행정으로 변혁할 것입니다.”

기초자치체에 재원과 권한을 더 큰 폭으로 이양해 서비스해야 할 것과 부담해야 할 것의 관계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처음으로 지역의 자주성, 자기책임, 자기 결정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지역의 경제활동을 활력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개성적이면서도 매력 넘치는 풍부하고 아름다운 일본 열도를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지역 주권국가」의 확립이야말로 「우애」의 ‘현대적 정책표현’이며 미래의 ‘시대의 정치 목표’에 상응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를 억제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안정된 경제협력과 안전 보장의 체제를 만드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애」가 이끄는 또 하나의 국가 목표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창조일 것이다. 물론 일•미안보체제는 앞으로도 일본 외교의 계속되는 기본축이며, 그것은 분명히 중요한 일본 외교의 기둥이다. 동시에 우리는, 아시아에 위치하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경제성장의 활력이 넘쳐 흘러 더욱 더 긴밀히 결합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을 우리 나라가 살아가는 기본적인 생활 공간이라고 파악하고 이 지역에 안정된 경제협력과 안전 보장의 체제를 만드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미국의 금융 위기는 많은 사람에게 미국 일극시대의 종언을 예감시켰고, 또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영속성에 대해 우려하게 만들었다. 나도 이라크 전쟁의 실패와 금융위기에 의해서 미국 주도의 글로벌리즘의 시대는 끝났으며, 세계는 미국 일극지배의 시대로부터 벗어나 다극화의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 대신하는 패권국가는 눈에 띄지 않고, 달러에 대신하는 기축통화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일극시대부터 다극 시대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미지는 애매하고, 새로운 세계의 정치와 경제의 모습이 분명히 안 보이는 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러한 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 아닌가?

미국은 향후 영향력을 저하시켜 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2, 30년 동안에도 그 군사적 경제적인 실력은 세계의 제일일 것이다. 또 압도적인 인구 규모를 가진 중국이 군사력을 확대하면서 경제강대국화 해 가는 일도 불가피한 추세다. 일본이 경제 규모로 중국에 추월당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계속 패권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분투하는 미국과 패권국가가 되고자 기도하는 중국의 틈에서 일본은 어떻게 정치적 경제적 자립을 유지하면서 국익을 지켜갈 것인가. 향후 일본 앞에 놓여질 국제환경은 쉽지만은 않다.

이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중소 규모 국가도 같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미국의 군사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를 바라지만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방종은 가능한 한 억제하고 싶다. 또한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감소시키면서 그 거대화 하고 있는 경제활동의 질서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이 지역의 제국가들의 거의 본능적인 요청일 것이다. 그것은 지역적 통합을 가속시키는 큰 요인이 되기도 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글로벌리즘이라고 하는 꼭 좋다고도, 또 반드시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초국가적인 정치경제이념이 좌절하게 된 지금, 다시 민족주의가 제국가의 정책결정을 크게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몇 년 전 중국의 반일(反日) 폭동이 상징하듯이 인터넷의 보급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결합을 가속시켜 때로는 제어 불능의 정치적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한 시대 인식하에 우리는 새로운 국제협력체제의 구축을 목표로 하는 가운데, 각국의 과도한 민족주의를 극복하여 경제협력과 안전보장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유럽과 달리 인구규모도 발전단계도 정치체제도 다른 이 지역에서 경제통합은 하루 아침에 이룩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이 선행하였고 한국, 대만, 홍콩이 그 뒤를 잇고, ASEAN과 중국이 이룩해낸 고도경제성장의 연장선상에서 지역적인 통화통합, ‘아시아 공통 통화’의 실현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며, 그 배경이 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항구적인 안전보장의 틀을 창출하는 노력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 ASEAN, 일본, 중국(홍콩 포함), 한국, 대만의 GDP 합계액은 세계의 4분의 1이 되어 동아시아의 경제적 역량과 상호의존 관계의 확대심화는 과거에는 없었을 단계에 이르고 있어 이 지역의 경제권형성의 필요충분한 하부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제국가간에는 역사적 문화적인 대립과 안전보장상의 대항 관계가 얽혀있어 정치적으로는 많은 곤란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력 증강문제, 영토문제 등 지역적 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여러 문제는 그 자체가 일중(日中), 한일(韓日) 등의 양국간의 교섭을 통해서도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어서, 양국간에 그 문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려고 하면 할수록 쌍방의 국민감정을 자극해 결국 민족주의감정의 격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역적 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문제는 실은 지역적 통합의 폭을 확대시키는 과정에서만 해결할 수밖에 없다 라는 역설에 서있다. 예를 들어 지역적 통합이 영토 문제를 풍화(風化)시키는 것은 EU의 경험으로 분명하다.

나는 헤세이(平成) 17년(2005년)에 「신헌법시안」을 작성했을 때 그 「전문」에 앞으로의 반세기를 내다본 국가목표를 내걸고 “우리들은 인간의 존엄을 존중해 평화와 자유와 민주주의의 혜택을 전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향수하는 것을 희구하여 세계,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항구적으로 보편적인 경제사회 협력 및 집단적 안전 보장의 제도가 확립되는 것을 염원하며 부단한 노력을 계속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일본헌법이 이상(理想)으로 한 평화주의, 국제 협조주의를 실천해 나가는 길인 동시에 미중(美中) 양대국의 사이에서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자립을 지켜 국익에 이바지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믿는다. 또 그것은 일찍이 칼레르기가 주장한 「우애 혁명」의 현대적 전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예를 들면 이번 세계 금융 위기후의 대응에 있어서도, 종래의 IMF, 세계은행 체제의 단순한 보강만이 아니고 장래의 ‘아시아 공통통화(共通通貨)’의 실현을 성취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아시아 공통통화의 실현에는 향후 10년 이상의 세월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것이 나아가 정치적 통합을 가져오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세계경제 위기가 심각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입장을 ‘우회하여야할 장기적인 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계가 혼돈되어 불투명하고 불안정하면 할수록 정치는 높고 큰 목표를 내걸고 국민을 이끌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세계사의 전환점에 서서 국내적인 경기대책에 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세계가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결의와 구상력이 요구되고있다.

오늘날 ‘EU의 아버지’라고 칭송되는 쿠덴호프 칼레르기는 85년 전 『범유럽』을 간행했을 때 “모든 위대한 역사적 사건은 유토피아로 시작되어 현실로서 끝났다”, 그리고 “하나의 생각이 유토피아에 머무르는지 현실이 될 수 있는지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수와 실행력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訳)尹 星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