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어느 날 미국 플로리다주 항소법원은 일조권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린다. 사건의 발단은 피고인 폰테인블루 호텔의 신축 건물이 북쪽에 인접한 에덴 록 호텔의 수영장으로 드는 햇빛을 막게 되면서부터였다. 에덴 록 호텔은 폰테인블루 호텔을 상대로 공사를 중지하라고 소송을 제기했고,항소법원은 에덴 록 호텔에 그럴 권리가 없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일조권을 인정할 경우 건축 활동에 지장을 받아 미국 경제가 발전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법원은 정반대의 판결을 했다. 35층으로 건축허가를 받고 이미 분양까지 끝낸 주상복합아파트를 15층으로 낮춰 지으라는 판결을 내렸다. 북측의 28층짜리 아파트로 드는 햇빛을 가린다는 이유에서다. 일조권 분쟁은 이번만이 아니어서 남쪽에 새 건물이 들어서는 곳은 어느 곳이나 잠재적 갈등의 진원지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일조권 제도는 폐기하는 것이 좋다. 일조권은 건축법에서 인정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법원까지 나서서 공사를 금지하고 손해배상을 하게 한다면 도시에서의 모든 건축행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결국 모든 국민이 피해자가 될 것이다.

구체적 논의에 앞서 풀어야 할 용어상의 오해가 한 가지 있다. 일조권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햇빛이 인간에게 좋은지에 대한 논의와 같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해가 드는 집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누구에게 일조권을 줄 것인지의 문제다. 법원은 먼저 집을 지은 사람에게 햇빛에 대한 권리를 주고 있다. 북쪽에 먼저 지어진 건물이 있으면 남쪽 사람에게 건물을 낮춰 지으라고 요구할 권리를 준다. 반면 남쪽에 먼저 집이 지어져 있었다면 새로 짓는 북쪽 건물은 일조권을 주장할 수가 없다. 먼저 집을 지은 사람을 햇빛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현재 법원이 유지해온 일조권 제도인 셈이다.

문제가 된 두 집만 놓고 보면 먼저 지은 사람에게 권리를 주는 이 제도가 옳아 보인다. 그러나 도시 전체에 대한 영향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제도가 지속되면 북쪽으로 갈수록 건물이 높아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층수가 낮아지게 될 것이다.

판사들이 의도가 무엇이었든 상관 없이 도시의 형태는 그렇게 변해갈 것이다.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 북쪽이든 남쪽이든 같은 높이로 지어져야 하는 것이 효율적 도시다. 일조권 판결이 도시의 공간구조를 왜곡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따져볼 도덕적 책임이 판사들에게 주어져 있다.

공간 구조를 왜곡시킨다는 것 외,끊임 없는 분쟁의 원천이 된다는 문제도 있다. 그림자가 지면 일조권이 인정된다고는 하는데,어느 정도나 인정되는 것인지,손해배상 액수는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해서 사전에 알려진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일단 법원에 제소부터 하고 보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일본에서 일조권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법원이 일조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일본의 집들이 살기 좋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건축이 어려운 나머지 소득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좁은 집에 사는 것이 일본인의 실정이다. 우리의 일조권 판결은 일본의 좋지 않은 면을 본받은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제도로 인해 햇빛 드는 집은 오히려 줄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조권 침해를 피하려다 보니 타워형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고,그런 아파트는 북쪽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남쪽을 보는 집이 많아지라고 만든 제도일 텐데 말이다. 새로운 권리를 창설하려면 그로 인한 장기적 효과가 무엇인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우리의 일조권 제도는 숲은 보지 못한 채 나무들끼리의 관계만 보고 만든 제도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