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 조선 태조 때부터 쌓아올렸던 서울성곽.이제 군사적 기능은 벗어버리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총길이가 18.2㎞에 달하는지라 서울 곳곳을 거닐다 보면 잦다 싶을 정도로 서울성곽과 쉽게 마주친다. 따라걷다 보면 서울성곽이 마치 서울 유람의 이정표 구실을 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서울성곽 주변에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등 아름다운 자연과 서울의 '랜드마크'들이 자리잡고 있어서일까.

서울성곽을 따라 옛 한양에 해당되는 서울을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는 보통 네 구간으로 나뉜다. 숭례문~장충체육관 코스(남산 구간),장충체육관~혜화문 코스(낙산 구간),혜화문~창의문 코스(북악산 구간),창의문~숭례문 코스(인왕산 구간)다. 여기에는 현재 서울성곽이 소실돼버렸거나 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인 곳까지 포함돼 있다.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서울성곽을 보려면 북악산 인왕산 구간이 좋은데,산길이라 약간 몸이 고달픈 건 감수해야 한다. 낙산 구간은 혜화문부터 흥인지문까지 길게 성곽이 남아 있고 북악산 인왕산 구간에 비해 길도 수월한 편.남산 구간은 성곽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지만 걷기 편하고 남산 구경까지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 취향대로 고르면 된다.

이중 북악산 구간은 와룡공원~숙정문~창의문 코스가 2007년 전면 개방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1968년 김신조 등 남파 간첩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사건 이후 근 38년 동안 폐쇄돼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구간이라 성곽과 어우러진 자연을 마음껏 감상하기 좋다. 경사가 급한 부분도 일부 있어 산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소금땀을 뻘뻘 흘리기 십상이지만 성곽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서울의 풍광이 이를 충분히 보상해 준다.

북악산 구간을 돌아보는 방법은 방향에 따라 두 가지다. 창의문에서 시작하면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 방향에서 시작하면 버스에서 내려 제법 걸어야 하는 대신 비교적 평탄한 길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단 주의사항이 있다. 북악산 구간 일부는 군사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창의문,숙정문,말바위안내소 중 한 군데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신청서를 작성해야 들어갈 수 있다. 여전히 군사시설이 남아있어 아무 데에서나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정해진 장소 외에서 슬그머니 '도둑촬영'을 시도하자 관계자가 바로 나타나 사진을 검열하고 삭제를 요청한다. 그러니 갈 길도 바쁜데 이런 일로 기운을 빼지는 마시길.

창의문안내소에서 신청서를 쓴 다음 통행증을 목에 건 채 밖으로 나오자 바로 서울성곽이다. 산을 따라 죽 늘어선 성곽 뒤편으로 우거진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길게 이어지는 붉은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다 땀을 식힐 겸 잠시 뒤를 돌아보니 가까이로는 지금까지 스쳐 지나왔던 성곽이,멀리로는 인왕산까지 흘러가는 성곽이 보인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풍경이지만 촬영금지구간이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속 걸어 올라갔다. 간간이 보이는 철조망은 이곳이 군사보호구역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제법 높이 올라가자 광화문 종로 일대부터 평창동 성북동까지 서울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북악산 구간과 더불어 급한 경사를 자랑하는 코스는 인왕산 구간이다. 창의문부터 사직터널 부근까지 비교적 길게 성곽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하지만 힘겹게 올라가면 북악산 구간 못지않게 서울을 마음껏 내려다볼 수 있으니 고진감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남산 구간에서는 중간중간 성곽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 있어 지도의 도움이 약간 필요할 수도 있다. 한창 복원 중인 숭례문에서 시작해 성곽의 흔적을 더듬으며 남산까지 가면 이어진 성곽을 만날 수 있다.

N서울타워 등 남산의 명소로 눈요기를 하면서 따라가다 보면 남소문터 부근에서 또 한 번 성곽이 끊긴다. 타워호텔을 지나 더 가다보면 성곽이 다시 나타나고 장충체육관까지 연결된다. 인근 신라호텔 조각공원을 둘러보고 성곽을 멀리서 조망해봐도 좋다.

낙산 구간은 성곽을 따라 걷다가 대학로에서 공연 한편 보거나 동대문에서 쇼핑을 즐기면 딱인 코스.성곽을 구경하기 좋은 곳은 바로 낙산공원이다. 아담한 낙산공원은 자리를 잡고 앉아 성곽과 서울 야경을 바라보기에 맞춤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여행 Tip

서울성곽을 따라 걷는 길은 제법 길기 때문에 미리 정보를 수집해 가면 좋다. 종로구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종로엔 다 있다(cafe.naver.com/jongnotour)'에서 각 구간별 소요 시간과 인근의 둘러볼 만한 곳까지 자세하게 소개한 서울성곽 관광안내지도를 내려받을 수 있다. 녹색연합 홈페이지(www.greenkorea.org)에서는 서울성곽에 대한 온갖 정보를 담은 소책자 <서울성곽 순례길>을 얻을 수 있다. '서울성곽' 등으로 검색하면 된다. 이를 참고해 서울성곽 종주를 '로망'으로 삼아봐도 좋고,마음에 드는 일부 길만 골라 느긋한 산책을 즐긴 다음 인근 볼거리를 찾아가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