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헌법에 보장된 국무총리의 위상이다. 위로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아래로는 행정부의 모든 공직자들을 통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총리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갖느냐는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달렸다. 역대 총리를 보면 2인자로서 국정을 장악하고 권한을 행사한 '실세형'은 그리 많지 않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노재봉 총리,DJP연합으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 당시 김종필 총재,참여정부 때 이해찬 총리 정도다.

그 외에는 국정조정 기능에 충실한 '행정형' 또는 '관리형',각종 행사에나 참석하는 '얼굴마담형', 차기대권을 바라보는 '대선주자형' 등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어떤 유형의 총리가 될까.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정 총리 내정자의 역할에 대해 "그 동안 경제비평가로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등에 대한 건설적 대안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경험을 살려 행정 각부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결집하고 중도실용과 친서민정책을 내실있게 추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정부 출범 초기에는 청와대가 주도권을 갖고 국정을 관장해 왔다면 이제 내각이 호흡을 맞춰 실천할 때"라며 "그런 측면에서 총리실의 내각 조정 기능이 이전보다 좀 더 강화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의 분위기로 보면 이 대통령이 정 내정자에게 적지 않은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정 내정자도 지난 3일 총리직 수락 소감문을 통해 "국내외적 상황이 책상머리에서 고뇌할 만큼 한가하지 않고 우리가 직면한 현안 중 어느 하나 녹록한 것이 없어 총리직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뒤집어보면 '대통령이 나에게 많은 일과 권한을 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 내정자가 단순 관리형이나 얼굴마담형 총리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가 실세총리로 부상하면 가장 먼저 경제부처와의 관계가 미묘해질 수 있다. 정 내정자는 감세정책 등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여러 차례 비판해왔다. 과천 경제부처 일각에선 "시어머니를 모시게 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색깔이 뚜렷하고 경제전문가인 총리에게 힘이 실릴 경우 사공이 많아져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경제문제는 윤진식 정책실장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중심으로 풀어가고 신임 총리는 사회통합과 세종시,교육문제 등에 치중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 대통령이 개각에 앞서 청와대 참모진을 개편하면서 윤진식 수석을 정책실장으로 격상시켜 명실공히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미리 주문했기 때문이다. 경제분야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대신 정책조율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정 내정자가 대선주자형 총리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총리로 발탁되면서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YS정권시절의 이회창 총리,참여정부의 이해찬 총리가 연상된다는 것.이는 전적으로 정 내정자의 총리 안착여부에 달렸다.

장진모/홍영식/정종태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