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열린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환헤지옵션상품인 키코(KIKO)와 관련돼 한국씨티 SC제일 신한 하나 외환 등 5개 은행에 내리기로 했던 징계를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키코란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 있거나 지정 범위보다 아래로 내려가면 약정을 맺은 기업이 이익을 보거나 최소한 피해는 입지 않지만,환율이 지정 범위 이상을 넘어가면 계약금액의 2~3배를 시장가보다 낮은 환율로 팔아야 돼 손해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이 충분한 설명없이 중소기업들에 키코를 판매했다고 보고 '기관주의' 징계를 내릴 방침이었다. 하지만 은행장 대표로 제재심의위원회에 참석한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 "키코와 관련된 은행과 기업들 간의 소송이 법원에서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이에 대한 징계 여부 판단을 미뤄달라"고 요구했고 심의위원들도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금융당국의 결정이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키코에 가입했다 예상하기 어려운 환율 급등으로 손실을 봤어도 계약을 무효화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기존 1심 재판부는 환율 급등으로 계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 계약 후 현저히 변경됐기 때문에 기존 계약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거로 일부 기업의 손을 들어 줬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계약 당시 기업과 은행이 환율이 급격히 변동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고 볼 수 없다"며 "기업이 위험을 스스로 감수한 것"이라고 1심 결정을 뒤집었다. 고법에는 현재 20여개의 키코 관련 가처분 신청이 계류 중이다.

고법은 다른 법적 논쟁에 대해서도 은행측 손을 들어줬다. "환율 변동에 따른 은행의 손실은 제한돼 있지만 기업의 손실은 무제한이어서 불공정하다"는 기업 측 주장에 대해 "계약 내용이 환율 변동의 확률적 분포를 고려해 은행과 기업의 기대 이익을 대등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환율 변동 가능성에 대한 은행의 사기 및 기업 착오 여부에 대해서도 "기업이 계약 내용의 대체적 구조를 이해한 점이 소명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법은 '채권자는 외환거래 규모가 큰 수출 기업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이라는 전제를 깔아 외환 거래가 적은 기업은 환율 급등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해 다른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여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키코 소송 판결이 연말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제재심의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내년 초에나 다시 논의를 진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