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1년] (1) 그동안 갖다준 선박 부품값이면 美NOV 인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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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한국 경제 도약 'K4전략' : ① 세계를 사냥하자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의 조선 3사는 2005년 이후 전 세계 드릴십(자체 동력으로 움직이는 심해시추선) 물량 34척을 싹쓸이했다. 수주 금액이 170억달러에 달했지만 이 중 34억달러는 핵심 부품인 드릴(척당 1억달러) 제조 기술을 보유한 미국 NOV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그 덕에 NOV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현대중공업(11%)이나 삼성중공업(5%)의 두 배가 넘는 21%에 달했다.
뉴욕 증권시장에서 NOV의 주가는 지난 17일 종가 기준으로 35달러38센트에 불과하다. 한때 91달러(2008년 6월)까지 갔던 주가가 경제위기를 지나는 동안 4분의 1로 곤두박질한 뒤 일부 반등한 게 그 정도다. 시가총액도 약 400억달러에서 150억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조선 3사가 그동안 갖다준 드릴 부품값만으로도 인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류기업은 지금 바겐세일 중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선진국 일류기업들이 글로벌 인수 · 합병(M&A) 시장에 '떨이'로 나와 있다. 원천기술과 노하우,그리고 알짜 자산을 갖고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를 하는 선진국 기업들의 시장 가격이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진 것이다.
삼정KPMG경제연구원은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물류 및 부동산 개발 노하우가 있는 기업,금융회사 등을 한국 입장에서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꼽았다.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으로는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로 한국 휴대폰 회사들에서 지금까지 약 5조원의 로열티를 뽑아낸 퀄컴이 우선 눈에 띈다. WCDMA의 원천기술도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해 총 매출(111억달러)의 35%인 39억달러를 특허료로 채운 대표적인 기술 중심 회사다. 퀄컴의 주가 역시 2008년 여름(56달러)에 비해 20% 넘게 떨어진 44달러 수준이다.
물류기업 중에서는 UPS와 페덱스 같은 글로벌 회사들의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 UPS의 시가총액(463억달러)은 2007년 7월(743억달러) 대비 37.7% 떨어졌으며,페덱스는 같은 기간 49%나 하락(276억달러→140억달러)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물류비용은 14% 수준으로 8~9%대인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회사로 눈을 돌리면 M&A 후보군은 더 다양해진다. GE캐피털과 함께 세계적인 비은행권 금융회사로 꼽히는 미국의 CIT그룹만 해도 총 자산이 800억달러가 넘고 매출액은 연간 70억달러에 가깝지만 한때 60달러에 달했던 주가가 1달러36센트까지 떨어지면서 2억달러만 투자해도 대주주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닥치는 대로 쓸어담는 중국 일본
그런데 정작 글로벌 M&A 시장에는 한국 기업과 국부펀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은 민 · 관이 합심해 세계 일류기업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담고 있다. 중국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밑천 삼아,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긴축 경영으로 비축한 실탄으로 지칠 줄 모르는 '기업 사냥'을 하고 있다. 여기에 위안화와 엔화 강세가 양국의 M&A 행보에 날개를 달아줬다.
2007년 초부터 중국은 자국 은행 시스템을 선진화하기 위해 미국과 서유럽 금융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중국건설은행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시아 17개 지점을 인수한 것을 비롯해 중국투자공사(CIC)는 미국 블랙스톤의 지분을,중국개발은행은 영국 바클레이즈의 지분을 각각 30억달러어치 인수했다. 에너지 자원 분야 M&A에서도 중국은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화넝전력이 싱가포르 발전회사인 투아스파워를 인수했고,중국석유화학 중해유전서비스 중화집단공사 등이 각각 △캐나다 탕가니가 오일 △노르웨이 아윌코 △영국 소코의 예멘사업 등을 가져갔다. 지난 2년간 해외 M&A에 쏟아부은 돈만 485억달러,투자 건수는 645건(지분 투자 포함)에 달한다.
일본은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해외 의약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일본 제약사 시오노기는 미국의 사이얼 파마를 인수했다. 다이치산교는 세계 10대 제네릭(복제약) 제조기업인 인도의 란박시를 M&A해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다케다 역시 미국의 밀레니엄 제약을 인수해 게놈(유전자지도) 기술,골수암 혈액암 관련 신약 기술 등을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다.
◆국부펀드 포트폴리오 다양화해야
M&A 시장에서 중국 일본이 뛴다면 한국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중국과 일본의 해외 M&A 거래액이 각각 36%와 63% 증가하는 동안 한국은 1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거래 건수로는 중국이 74%,일본이 25% 각각 늘어난 데 반해 한국은 오히려 8%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국부펀드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렸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으로 채권 또는 비슷한 성격의 금융자산에만 투자해서는 수익을 높이기 어렵다"며 "한국투자공사(KIC)를 통해 중앙은행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적인 투자를 하게 하고 국가의 외환보유액을 비롯한 여유 자산을 한 곳에 집중시켜 역량을 키우는 등 국가 차원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기현/김인식 기자 khcha@hankyung.com
뉴욕 증권시장에서 NOV의 주가는 지난 17일 종가 기준으로 35달러38센트에 불과하다. 한때 91달러(2008년 6월)까지 갔던 주가가 경제위기를 지나는 동안 4분의 1로 곤두박질한 뒤 일부 반등한 게 그 정도다. 시가총액도 약 400억달러에서 150억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조선 3사가 그동안 갖다준 드릴 부품값만으로도 인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류기업은 지금 바겐세일 중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선진국 일류기업들이 글로벌 인수 · 합병(M&A) 시장에 '떨이'로 나와 있다. 원천기술과 노하우,그리고 알짜 자산을 갖고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를 하는 선진국 기업들의 시장 가격이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진 것이다.
삼정KPMG경제연구원은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물류 및 부동산 개발 노하우가 있는 기업,금융회사 등을 한국 입장에서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꼽았다.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으로는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로 한국 휴대폰 회사들에서 지금까지 약 5조원의 로열티를 뽑아낸 퀄컴이 우선 눈에 띈다. WCDMA의 원천기술도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해 총 매출(111억달러)의 35%인 39억달러를 특허료로 채운 대표적인 기술 중심 회사다. 퀄컴의 주가 역시 2008년 여름(56달러)에 비해 20% 넘게 떨어진 44달러 수준이다.
물류기업 중에서는 UPS와 페덱스 같은 글로벌 회사들의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 UPS의 시가총액(463억달러)은 2007년 7월(743억달러) 대비 37.7% 떨어졌으며,페덱스는 같은 기간 49%나 하락(276억달러→140억달러)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물류비용은 14% 수준으로 8~9%대인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회사로 눈을 돌리면 M&A 후보군은 더 다양해진다. GE캐피털과 함께 세계적인 비은행권 금융회사로 꼽히는 미국의 CIT그룹만 해도 총 자산이 800억달러가 넘고 매출액은 연간 70억달러에 가깝지만 한때 60달러에 달했던 주가가 1달러36센트까지 떨어지면서 2억달러만 투자해도 대주주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닥치는 대로 쓸어담는 중국 일본
그런데 정작 글로벌 M&A 시장에는 한국 기업과 국부펀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은 민 · 관이 합심해 세계 일류기업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담고 있다. 중국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밑천 삼아,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긴축 경영으로 비축한 실탄으로 지칠 줄 모르는 '기업 사냥'을 하고 있다. 여기에 위안화와 엔화 강세가 양국의 M&A 행보에 날개를 달아줬다.
2007년 초부터 중국은 자국 은행 시스템을 선진화하기 위해 미국과 서유럽 금융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중국건설은행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시아 17개 지점을 인수한 것을 비롯해 중국투자공사(CIC)는 미국 블랙스톤의 지분을,중국개발은행은 영국 바클레이즈의 지분을 각각 30억달러어치 인수했다. 에너지 자원 분야 M&A에서도 중국은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화넝전력이 싱가포르 발전회사인 투아스파워를 인수했고,중국석유화학 중해유전서비스 중화집단공사 등이 각각 △캐나다 탕가니가 오일 △노르웨이 아윌코 △영국 소코의 예멘사업 등을 가져갔다. 지난 2년간 해외 M&A에 쏟아부은 돈만 485억달러,투자 건수는 645건(지분 투자 포함)에 달한다.
일본은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해외 의약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일본 제약사 시오노기는 미국의 사이얼 파마를 인수했다. 다이치산교는 세계 10대 제네릭(복제약) 제조기업인 인도의 란박시를 M&A해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다케다 역시 미국의 밀레니엄 제약을 인수해 게놈(유전자지도) 기술,골수암 혈액암 관련 신약 기술 등을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다.
◆국부펀드 포트폴리오 다양화해야
M&A 시장에서 중국 일본이 뛴다면 한국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중국과 일본의 해외 M&A 거래액이 각각 36%와 63% 증가하는 동안 한국은 1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거래 건수로는 중국이 74%,일본이 25% 각각 늘어난 데 반해 한국은 오히려 8%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국부펀드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렸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으로 채권 또는 비슷한 성격의 금융자산에만 투자해서는 수익을 높이기 어렵다"며 "한국투자공사(KIC)를 통해 중앙은행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적인 투자를 하게 하고 국가의 외환보유액을 비롯한 여유 자산을 한 곳에 집중시켜 역량을 키우는 등 국가 차원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기현/김인식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