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죽이란 대나무는 심은 지 5년 동안은 눈에 띄는 성장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하루에 70㎝씩 자라기 시작해 나중에는 30m까지 자란다고 한다. 모죽은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성장을 위해 5년이란 오랜 준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땅 속에서 넓고 깊게 뿌리를 뻗어 30m까지 자랄 수 있는 탄탄한 기초를 다진 후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모죽의 성장과정은 준비와 기다림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이뤄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빨리 빨리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빨리 빨리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준비가 부족한 조급함은 자칫 모래성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양적 성장을 추구하던 시대에는 장점이자 미덕이었던 것들이 경제의 질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오늘날에는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을 보면 혜성처럼 나타나 큰 인기를 누리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스타들이 있다. 한 번은 요행으로 통했을지 모르지만 기본기가 부족한데 두 번,세 번 연달아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모죽처럼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빛을 보는 스타들도 있다. 김명민이란 연기자를 몇 해 전 사극에서 처음 보았을 때 신인이 연기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데뷔한 지 9년이나 지난 중견이었다. 그 뒤 반짝 스타에 그치지 않고 여러 드라마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9년이란 오랜 무명의 세월을 묵묵히 준비해 온 그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전 미국 PGA에서 양용은 선수가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외신들은 최대 이변이라고 보도했지만 19세에 골프장 아르바이트생으로 입문,18년간의 준비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양 선수에게 메이저대회 우승은 이변이 아닌 준비와 기다림이 가져다 준 결실이었다.

준비와 기다림은 많은 인내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이는 기업과 우리경제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연구개발을 하다 보면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고도 실질적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당장은 실망스럽지만 실패를 더 큰 성장을 위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끈기가 필요하다.

우리경제는 지금 뿌리를 넓고 깊게 뻗어 미래의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그러기 위해 기업은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정부도 기업이 제대로 뿌리를 내려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모죽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한번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모죽처럼 쑥쑥 뻗어가는 우리경제를 꿈꿔본다.

김상열 <대한상공회의소상근부회장 sangyeolkim@korcha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