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1년] (2) 라디오 겸용 MP3, 유럽에 관세에 걸리고 저작권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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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한국 경제 도약 'K4전략' : ② 新FTA 전략 세워라
A 전자업체는 지난해 라디오 기능이 결합된 MP3플레이어를 유럽연합(EU) 국가에 수출하려다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우선 관세에 걸렸다. MP3플레이어에 대한 EU의 관세율이 2%여서 충분히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통관 과정에서 라디오로 판정받아 관세율 10%를 통보받았다. 판매단계에서도 꼬였다. A사 관계자는 "MP3플레이어에 개당 2.65유로씩의 기기 부과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라디오라고 판정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며 "단순히 관세율만으로 사업성을 따져서는 곤란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준비 없으면 열매 없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 · EU FTA가 체결돼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 효력이 발생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한국 제조업체들은 발효만 되면 '무관세의 축복'이 시작될 것으로 생각하며 잔뜩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강환우 삼정KPMG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그러나 "FTA만 발효되면 관세율이 저절로 0%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오히려 새로운 규제준수의 시작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제품분류 기준과 원산지 규정에 대한 분석과 대비가 없으면 FTA의 열매를 따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FTA가 발효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관세율표만 보고 사업 계획을 세웠던 A사가 겪은 낭패는 언제라도 다른 국내기업들이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예컨대 특정 국가와의 FTA 협정에서 일반 'LCD모니터'는 무관세로 했지만 'LCD TV'에 대해서는 10%의 관세를 유지했다고 하자.LCD모니터에 TV수신 튜너를 덧붙여서 수출했는데 상대국에서 이것을 LCD TV로 분류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업체는 일반 LCD모니터를 무관세로 통관시킨 뒤 현지에 조립공장을 만들어서 TV수신 튜너를 붙이는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엔 원산지 규정의 벽을 넘어야 한다. 핵심 부품인 TV수신 튜너가 한국산이면 제 아무리 현지에서 조립한 LCD TV라도 한국산으로 분류한다고 규정돼 있다면 결국 10%의 관세를 추징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종합적인 기업 지원체계 필요
한국은 양자간 협력 위주로 가는 새로운 국제통상질서에서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미국 EU 등 7개국과 FTA를 체결하거나 합의했고 10여개국과 동시다발적으로 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FTA 체결에만 신경을 쓰고 있을 뿐 협정 발효 후 국내 기업들이 0%의 특혜 관세를 적용받도록 하기 위해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이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 역시 FTA 발효가 영업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해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많다.
FTA 혜택을 입으려면 우선 원산지 증명을 준비해야 한다. 싱가포르와 아세안 등은 기관증명을,칠레 캐나다 미국 등은 자율증명을 채택하고 있다. 기관증명의 경우는 국내 관세 행정의 결과물이 외국에까지 미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관세청은 국내 기업이 FTA 상대국에 수출했을 때 원산지 문제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자율증명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수출 기업이 자율적으로 원재료의 배합 비율 및 원산지별 단가 구성 등을 분석한 뒤 상대국의 제품별 원산지 판별 규정과 대조해 증명서와 확인서를 첨부해야 한다. 자동차 조선 기계 전자 등 수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조립 산업이 많은 한국으로선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공산이 크다.
나아가 FTA별 원산지 기준,관세율,제품분류 규정 등을 따져 △원재료 조달 방법△조립 가공 지역△최종 판매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최적화하는 단계까지 가야만 FTA 시대에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부 역시 FTA 환경 아래에서 국내 기업이 FTA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종합적인 지원 체계를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FTA 활용은 선택 아닌 필수
FTA 활용이 이처럼 까다롭다고 해서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지역주의가 확산되고 비관세장벽이 높아지고 있어 FTA를 활용해 상대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경쟁기업이 FTA에 잘 대비해서 비교우위를 확보해가고 있다면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잘 짜여진 한국의 FTA 링크를 외국계 다국적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득을 챙기게 될지도 모른다. FTA 피해 농민들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얻은 기회를 그런 식으로 날려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FTA에서 얻게되는 효용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구매처를 제3국에서 FTA 상대국으로 옮기거나 중국 등지로 옮겼던 생산 시설을 한국으로 다시 'U턴'하는 등 전반적인 사업구조 재편이 필요하다"며 "짧은 시간에 하기에는 어려운 작업인 만큼 민 · 관이 힘을 합쳐 체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차기현/김인식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