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남구, 과감한 유치전략 드라마같은 역전극
운영위 부인들 공략 FITA 총회서 자그레브 제쳐

“세계 양궁선수권 대회가 하마터면 다른지역으로 가버릴 뻔 했습니다”

제45회 울산세계양궁선수권대회 유치로 일약 세계 양궁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울산 남구의 양궁 선수권 유치과정의 뒷이야기가 새삼 화제다. 국내외 후보 도시에 비해 후발주자였는데도 과감한 결단과 기발한 유치전략,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공조가 드라마틱한 역전극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대한양궁협회가 국내 개최도시 후보지를 선정하던 2006년 7월20일 오후 12시5분께. 울산 남구청에는 협회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북 예천이 대회운영비 3억원 지원을 약속했는데, 남구도 이같은 지원이 가능하냐’는 질문이 요지였다.

바로 확답을 할 수 없었던 실무라인은 ‘산업도시 울산이 3억원 때문에 세계대회를 놓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결재도 거치지 않은 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바로 전했다. 다행히 박맹우 울산시장과 김 두겸 남구청장의 뜻도 이와는 다르지 않았다. 3억원 확보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곧바로 박 시장의 결재가 떨어졌고 결국 남구가 국내 개최지가 됐다.

당시 예천은 진호국제양궁장이란 유명한 국제 규격의 양궁장을 보유한 데다 풍부한 대회 유치 경험, 탄실한 양궁 인맥 등으로 가장 유력한 개최 후보지였다. 당초 울산의 숙박과 관광, 교통 여건 등 도시 경쟁력이 예천을 물리친 비결로 꼽혔으나, 알려지지 않은 울산시와 남구의 과감한 결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이어 같은해 8월20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양궁연맹(FITA)의 개최지 선정 때도 남구는 극적인 뒤집기로 판정승했다. 당시 경쟁도시인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는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가장 유력한 개최지로 떠올랐다. 더욱이 그 무렵 우리 정부는 강원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집중하던 때여서 남구의 유치전은 더욱 힘겨웠다. 또 FITA는 울산 남구의 재정 부담을 우려해 우리 정부나 울산시의 재정보증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남구는 전세를 뒤집을 기발한 전략을 마련했다. 바로 개최지 선정 투표권을 지닌 FITA 운영위원들의 부인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남구는 짐 이스턴 전 FITA회장과 우거 에르데너 현 회장 등의 부인을 상대로 로잔 관광을 주선하면서 울산의 대회 유치 당위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한국 전통 탈이 담긴 액자와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조각품 등 선물도 잊지 않았다. 이 같은 노력에 따라 우거 에르데너 회장의 부인 제퍼 에르데너로부터 “우리 남편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귀띔을 들었고, 결국 울산은 개최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울산시와 대한양궁협회(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도 큰 힘이 됐다.
박 시장은 3억원의 대회운영비 뿐 아니라 FITA가 요구했던 재정보증을 서는가 하면, 국토해양부로부터 문수국제양궁장 확장을 승인받고 확장비용 30억원도 지원했다.

형평성을 고려해 국내 개최지 선정까지 중립을 지키던 정의선 회장도 스위스에서 열린 최종 유치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 회장은 남구의 유치단 발족을 돕는 한편, 로잔에서 FITA 임원들과 일대일 대면을 통해 협조를 요청하는 강행군도 마다하지 않았다.또 정 회장은 이번 대회 준비를 위해 차량 2대를 지원했으며, 8일과 9일 경품으로 제공될 차량 2대도 추가로 내놓았다.

김태연 세계양궁선수권기획단 담당은 “스위스의 비싼 물가 때문에 밥값을 아끼기 위해 숙소에서 밥을 짓고 라면을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난다”면서 “뒤늦은 시작이었지만 울산시와 대한양궁협회의 지원에다 남구의 노력이 더해져 울산의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