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비지오, 공장ㆍ기술없이 年매출 20억달러 '유쾌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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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형 사업모델 뜬다
"처음 사업 모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 회사는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패널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지요. 이 회사는 앞으로 최소한 3년은 계속 활약할 것으로 봅니다. 저가 시장에서는 이렇다 할 적수가 안 보입니다. "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2003년 설립된 중국계 미국 회사 비지오를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실제로 비지오는 요즘 북미 시장에서 'A급 기업' 대우를 받는다. 지난 1분기에는 판매량 기준으로 21.4%의 점유율(아이서플라이 기준)을 기록,북미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등 기염을 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미국 외신들도 "삼성과 LG,소니 등이 브랜드와 기술력을 독점한 TV 시장에서 비지오가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비지오가 분기 기준 점유율 랭킹에서 1위에 오른 것은 2007년 2분기 이후 두 번째다.
◆'스피드' 보다 '타이밍'
비지오는 R&D(연구개발)를 통해 기술을 축적하고 마케팅과 광고로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반적인 TV 메이커와는 구분되는 독특한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다. 이 회사는 한번도 '업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신기술을 내놓은 적이 없다. 선두 업체들이 브로드밴드(인터넷) TV,LED(발광다이오드) TV 등을 선전할 때도 조용히 뒷짐만 지고 있었다.
비지오 제품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완전히 시장이 형성된 이후다. 이 회사의 핵심 병기는 경쟁업체보다 수백달러 저렴한 가격이다. 경쟁업체의 광고를 보고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가격표를 살펴본 후 비지오 제품을 고르게 하겠다는 게 비지오 전략의 핵심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지오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품질이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미국 소비자잡지 '컨슈머리포트'를 살펴보면 삼성,LG,소니 등과 나란히 비지오의 제품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저가 브랜드답지 않게 간단한 사용설명서,잡지 광고를 응용한 제품 포장 등 디테일한 부분에도 대기업 못지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산도 유통도 필요없다
비지오는 같은 사양의 제품을 경쟁업체보다 20~30% 저렴하게 내놓지만 꾸준히 한 자릿수대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가격경쟁력의 비밀은 아웃소싱에 있다.
비지오는 전 세계에서 소싱한 TV 부품을 암트란 등 대만의 전문 위탁생산업체에 보내 제품을 만든다. 애프터서비스도 물론 외주를 준다. 조립라인을 건설하거나 보수할 일도,대규모로 기술 인력을 채용할 일도 없는 셈이다. 실제 비지오 미국 본사의 직원 수는 100명 안팎에 불과하다.
제품 유통도 남다르다. 베스트바이,시어즈,홈디포와 같은 전자제품 전문 유통채널이 아닌 할인점을 주로 공략한다. 저렴한 제품은 할인점에서 더 잘 팔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비지오의 파트너는 코스트코.비지오는 이 회사에 마케팅 전략수립가 제품 포장 등 세일즈 프로세스를 대부분 위탁하고 있다.
◆고가시장에도 확산되는 네트워크형 사업모델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통해 제품을 만드는 비지오식 '네트워크형 사업모델'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사업 모델은 네트워크를 잘만 설계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저가 시장뿐 아니라 고가 시장에서도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글로벌 히트상품인 애플의 아이팟은 프리미엄급 시장에서도 네트워크형 사업모델이 먹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애플은 제품 기획과 디자인,판매만 맡고 있다. 반도체 등 주요 부품은 한국과 일본 기업에서 들여오고 조립은 중국이나 대만 회사에 위탁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수직계열화 체제는 업황이 악화되거나 부품 수급난이 벌어질 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존 히트상품의 연장선에서 신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컨셉트의 제품이 나오기 어렵고 조직을 유연하게 관리하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류나 휴대폰처럼 유행에 민감해 신상품의 성공 가능성이 낮은 업계에서는 네트워크형 사업모델을 상황에 맞게 응용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