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속에서 유머 뽑아냈더니 관객 몰리네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해운대'와 함께 여름 극장가를 쌍끌이 한 '국가대표'가 7일 700만명을 돌파했다. '해운대' 쓰나미에 밀려 개봉 첫 2주는 2위에 그쳤지만 3주차부터 4주 연속 흥행 1위를 달렸다. "영화가 완전 죽음이야"란 강력추천 입소문이 번지면서 거센 뒷심을 발휘한 것이다. 연출자 김용화 감독(38)은 데뷔작 '오 브라더스'(320만명) '미녀는 괴로워'(662만명)에 이어 3연속 흥행 홈런을 날렸다. 서울 신사동 KM컬쳐(제작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초반에는 '해운대'에 묻혀 버릴까 걱정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의 본질(재미와 작품성)이 우수하다는 게 입소문을 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어요. 감정적 만족도가 다른 영화보다 높았던 거지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가 완전 죽음이야" "내 인생의 영화야" "초대박급"이란 말로 강추하더군요. "

'국가대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스키점프에 찌질한 인생들이 도전하면서 당당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 평단의 찬사와 흥행을 동시에 잡았다.

"작품성이 좋게 평가된 것은 드라마틱한 부분에서 한쪽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연출했기 때문일 겁니다. 기쁜 순간에 가려진 고통을 포착했고 진지한 순간에도 유머를 뽑아내려 했습니다. 인위적인 게 아니라 우리 삶이 그렇습니다. 단순히 슬픈 드라마는 생명력이 짧습니다. 벅차서 우는 눈물,감정이 충만해 나오는 눈물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

그는 또 스포츠 드라마답게 경기 장면을 실제 이상으로 찍어내야 관객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것으로 믿었다. 이를 위해 CG(컴퓨터그래픽)를 사용하지만 영화에 묻혀 드러나지 않게 했다.

"총 4800커트 중 CG만 1000커트로 560커트인 '해운대'보다 많지만 티가 안나지요. CG는 영화에 도움을 줘야 하지 그게 드러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CG를 잘했네'가 아니라 CG가 현실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게 연출 포인트였습니다. CG가 숨겨져야 이야기와 감정에 몰입할 수 있으니까요. "

4800개의 커트 수는 세계적으로 많은 수준.할리우드 영화들은 2000~3000커트,한국 영화는 1000~2000커트다.

"총 커트 수로만 따지면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어요. 커트를 이렇게 많이 사용하면 긴장과 이완의 리드미컬한 편집을 통해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감정을 계속 보여줄 수 있어요. 편집이 잘 된 영화라고 자부합니다. "

이 영화가 800만명을 동원하면 제작 · 투자사 측 흥행수입은 280억원에 달한다. 총제작비 120억원을 제하면 예상 순익은 160억원.중형 제작 · 투자사인 KM컬쳐가 감독 등 참여자 지분을 포함해 70% 정도 투자했다. 대부분 30%를 넘지 않는 메인투자 관행을 깬 것이다.

"영화 투자는 그렇게 '올인'해야 합니다. 적당히 빠져 나올 생각을 해선 안됩니다. 카지노 블랙잭(48~49%)보다 승률이 낮은 데 조금씩 쪼개 투자한다면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창투사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영화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죠."

전작 '오 브라더스''미녀는 괴로워'를 포함해 3연속 흥행 홈런을 때린 비결도 들려줬다. "세 편 모두 인간의 고통을 얘기하지만 고통스럽지 않게 보여줬습니다. 고통의 크기를 먼저 보여주는 순간,지루해지거든요. 고통의 이면에도 밝음이 있고,비애감에도 유머는 존재하지요. 울어야할 상황에도 웃고,웃어야할 상황에도 울어버리는 에피소드들로 짰습니다. "

그는 할리우드 영화와 가장 닮은 한국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꼽힌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자란 '할리우드 키드'예요. 다만 할리우드 영화의 형식에만 치우치지 않고 인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데 신경씁니다. 한없이 현학적이고 자의식을 과잉해 드러내는 영화도 만들 수 있지만 대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는 그래선 안되지요. 감독의 자존심을 적절히 지키면서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줘야지요. "

그는 "앞으로 실패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며 "나태해 실패한다면 정신차리면 되겠지만 관객의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민폐이고 공적이기 때문에 (영화를) 그만 둘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