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1600대 초반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박스권 장세가 지속되면서 지수 상승을 주도했던 외국인의 매매 패턴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동안 집중적으로 사들였던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수출주는 내다파는 대신 통신 유통 제약 등 경기방어 성격이 강한 내수주 비중을 조금씩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의 이 같은 움직임은 기존 주도주의 밸류에이션(가격 수준) 부담이 커지자 투자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내수주가 부각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현대차 등 IT와 자동차 대표 기업들의 하반기 실적 전망이 워낙 좋기 때문에 외국인의 내수주 비중 확대는 '전략 변화'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전술 수정'의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다.

◆거래대금 나흘 만에 10조원 돌파

8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11.12포인트(0.69%) 오른 1619.69에 마감됐다. 중국 증시 강세 등에 힘입어 지난 4일 이후 사흘 만에 상승 반전했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친 거래대금은 이날 10조3929억원에 달해 지난 2일 이후 나흘 만에 다시 10조원을 넘어섰다. 최창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그동안은 IT 자동차 등 주도주에 대한 외국인의 일방적인 매수 우위 장세였는데,지수가 1600선을 넘어서면서 이들 주도주를 둘러싼 외국인과 기관 간의 매매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이날도 외국인과 기관의 종목별 손바뀜 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외국인 내수주 비중 확대 움직임

외국인은 이날 793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사흘 연속 순매수 기조를 이어가긴 했지만 지난달 하루평균 1895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하던 것과 비교하면 매수 강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2일과 3일엔 각각 2836억원,1473억원을 순매도했다. 4일 이후 순매수로 돌아섰지만 매수 규모는 1000억원에도 못 미친다.

외국인이 주로 사들이는 종목도 달라졌다. 8월과 9월(1~7일)의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을 분석한 결과 IT와 자동차는 팔고 내수주는 사들이는 모습이 뚜렷하다.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 하루도 빼지 않고 순매도하고 있으며 LG전자 역시 5거래일 가운데 사흘간 순매도했다. 현대차는 2일 이후 나흘째 팔고 있다.

반면 이달 들어 국내 소비 상황에 민감한 내수주들을 꾸준히 사들이는 양상이다. KT CJ제일제당 유한양행 등은 이달 들어 7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순매수하고 있으며 신세계의 경우 하루를 제외하고 사들였다. 이에 따라 이들 종목의 외국인 지분율도 상승했다. KT는 지난달 말 외국인 지분율이 41.86%였으나 7일에는 42.62%까지 높아졌다. 유한양행 신세계 CJ제일제당 등의 외국인 지분율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IT · 자동차 등 기존 주도주도 여전히 관심

외국인이 내수주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지수 방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존 주도주들이 그동안 너무 많이 올라 가격 부담이 커진 것이 1차적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오태동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삼성전자와 현대차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기존 주도주들은 외국인이 생각했던 목표주가에 도달해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내수주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IT업종 지수는 올 들어 78% 올라 코스피지수 상승률(39%)을 크게 웃돌고 있으나 대표적인 내수주인 유통업지수는 상승률이 30%에 그쳤다.

최근 국내 내수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내수주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박승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흐름을 살펴보면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후 5~6개월 정도 흑자 기조를 이어가면 내수도 살아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올 들어 경상수지가 2월 이후 7개월간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내수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 중 하나인 미국 경기가 실업률 상승,소비심리 악화 등으로 최근 회복 모멘텀이 약화될 조짐이 일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외국인이 수출주 비중을 줄이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황창중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최근 미국계 자금이 국내 주식을 주로 사고 있는데,경기 회복 모멘텀 약화로 미국 경기에 민감한 IT와 자동차주 비중을 줄이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외국인이 내수주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기존 주도주들이 완전히 힘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박 연구원은 "IT업종의 4분기 실적이 3분기보다 안 좋을 것이란 컨센서스가 있었는데 최근 전망이 수정되면서 4분기가 더 좋을 것이란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결국 갈수록 IT업종의 실적 모멘텀이 강화되면 IT주가 다시 지수 상승을 이끌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황 센터장도 "국내 기업 전체 이익은 갈수록 좋아지겠지만 IT와 자동차 같은 수출 기업의 실적 개선세가 여전히 가장 돋보일 것"이라며 "내수주가 시장 주도주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