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브러더스 파산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몰락으로 상징되는 금융위기는 이제 거의 끝나가는 모습이다. 리먼 사태 직후 전 FRB 의장 그린스펀은 이번 위기가 100년 만에 한 번 올까말까 한 위기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각국의 적극적인 재정투입 등에 힘입어 세계경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내년 하반기에는 위기 이전인 2008년 3분기 GDP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다.

문제는 위기 이후이다. 바람직스럽기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경기개선 흐름이 이후에도 물가 부담 없는 고성장으로 쭉 이어지면서 이전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망은 밝지 못한 것 같다. 이번 경제위기의 근저에 선진국 소비 버블이 자리잡고 있었던 만큼 이들 가계의 부채축소와 재정투입 여력 약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이론적으로 보아도 경제위기 이후의 세계경제 성장세는 이전보다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침체 기간 중에는 투자가 매우 부진한데다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는 강화돼 이노베이션 동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장기 실업 후 재취업자가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워 그만큼 노동생산성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 밖에 재정지출 증가에 따른 정부부채 증가로 금리가 오르고 재정건전화를 위한 조세증가 또한 노동과 투자 인센티브를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위기 이후에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맞는다면 수출에 크게 기대는 우리 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안으로 눈을 돌려보자.외환위기 이후 나타났던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나 '안정성 조기 확보'등 사회심리적 변화가 이번 위기를 경험하면서 심화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해석하면 이와 같은 위험기피적 성향은 투자 등 내수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적인 활력을 억누르는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IMF 외환위기는 투자증가율을 1990년대의 9% 수준에서 2000년대 3% 대로 떨어뜨리면서 평균성장률을 낮춘 변곡점이었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위험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지만 이면에는 경제의 활력이 사그라지게 하는 부작용도 생겨나는 것이다. 이를 넓게 해석하면,최근 발표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자수성가형 주식부자가 적다는 사실도 우리 사회의 위험기피적인 성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의 활력 회복이 몇몇 대기업에 투자를 독려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야성을 북돋우고 역동성을 높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응이다. 벤처기업 창업을 위한 금융지원이나 유망 중소기업 발굴을 위한 제도 마련 등은 기본적인 예가 될 것이다. 실패 후의 또 다른 기회를 주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증대시키고 금융 측면에서의 재기 시스템 보완 등 사회적인 패자부활의 길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 불패신화도 깨뜨려야 한다. 부동산 투기야말로 자원의 효율 분배를 가로막아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활력을 억누르는 독이기 때문이다. LTV나 DTI와 같은 금융규제 강화를 통해서든,공급확대를 통해서든 부동산투자의 기대수익률을 낮춰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생산총량은 노동과 자본,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도전정신과 야성으로 다져진 경제활력은 다양한 형태의 투자를 촉진시키고 일자리를 늘리게 될 것이다. 생산성은 과학기술발전과 양질의 교육,공정한 경쟁 촉진 등에 의해 높아진다. 경제활력이 늘어날 때 창의력과 혁신역량이 제고되어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증가하게 될 것임을 되새겨 구체적인 경제활력 제고방안을 꾀해야 할 것이다.

신민영 <LG경제硏 금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