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무수한 작품이 시간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한다. 시대와 더불어 그 의미를 갱신하는 텍스트,바로 그런 작품들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다. 고전은 하나의 우주다. 우주이되 어떤 근원과 향수로 속절없이 깊어진 심연이다. "

시인이자 소설가,평론가로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석주씨(55)의 《나는 문학이다》(나무이야기 펴냄)는 '언제 읽더라도 현재적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심미적 텍스트'인 고전을 써냈거나 남길 가능성이 있는 문인 111명을 통해 한국문학사 100년을 살펴보는 책이다.

한국문학사의 수많은 문인들 중 이광수에서 배수아까지 작가 111명을 선정한 기준에 대해 장씨는 "'우리 문학사에 남을 만하다'는 데에 수긍할 수 있는 문인들과 앞으로 하나의 정전이 될 만한 작품을 낼 것이라 예상되는 생존 문인들을 주관적인 잣대로 골랐다"고 설명했다. '인물로 읽는 한국문학사'와 같은 형식을 취한 이유는 "적어도 가슴에 정부(政府)를 품고 있는 작가들을 통해 문학사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각 작가마다 생애와 작품 개관,우리 문학사에 미친 영향과 평가가 들어갔다. 장씨는 이광수에 대해 '한국 현대 서사문학이 발아하는 기점이자 여명의 외침이고 아울러 무시무시한 빅뱅'이라고 평하면서도 '선각자 이광수를 현대문학의 흠 많은 아버지로 갖게 된 것은 우리 현대문학사에 내장된 불행'이라고 썼다.

책은 한국문학사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은 독자라 해도 흥미롭게 읽어낼 만하다. 작가의 생애와 시대 상황을 평전식으로 쓰지 않고 여러 비화를 곁들여 풀어냈기 때문이다. 일례로 시인 천상병 편에서는 그가 버젓이 살아 있으면서 첫 시집 《새》를 유고시집으로 내게 된 기인다운 사연을 소개한다.

1970년 겨울 어느 날인가부터 다음 해 봄이 다 가기까지 행방이 묘연한 그가 죽었으리라 짐작한 지인들은 "시집 한 권도 없이 세상을 뜨다니!"란 안타까운 마음에 이리저리 작품을 모으고 출간비용을 조달한다. 그렇게 호화 장정으로 유고시집이 나와 장안의 화젯거리가 된 와중에 시인이 '백치 같은 무구한 웃음을 흘리며' 나타난다. 알고보니 그동안 그는 행려병자로 오인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었다. 장씨는 "문학 비전공자도 인문교양서처럼 읽을 수 있도록 재미있게 쓰려고 했다"면서 "다만 생존 작가들의 뒷이야기를 쓰면 명예훼손이 될지도 몰라 그들은 작품 중심으로 다뤘다"고 전했다.

책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장씨는 "책을 쓰기 위해 검토한 옛 신문과 잡지,평전,문학서 등 자료가 단행본으로 치면 2000권 분량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정도 분량으로 1980년부터 2010년까지 30년 동안 활동한 작가들을 다룬 《나는 문학이다》 2권을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