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행보가 속도를 내면서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치쇼'라고 공세를 취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의 잇단 친서민행보가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정운찬 총리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 서민정책을 구체화하는 역할까지 맡게 될 경우 '서민 브랜드'를 완전히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당내에 팽배하다. 최근 민주당 내 정책통 의원들 중심으로 강경투쟁에서 탈피해 서민 중산층을 겨냥한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생대책본부장인 이용섭 의원은 10일 기자와 만나 "처음에는 MB의 서민정책이 통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최근에는 어찌됐든 국민들에게 먹혀들고 있다. 예산과 행정력을 갖고 있는 정부 여당의 힘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의원은 "초기 SSM(기업형 슈퍼마켓)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대통령이 '헌법 위배 소지가 있어 어렵다'고 언급하는 등 서민들의 현실과 동떨어지는 발언을 해 정치적 쇼라는 비판이 통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대통령의 인식이 크게 바뀐 것 같다"며 "입법을 추진할 힘도 없고 언론도 야당의 대안정책을 잘 반영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민주당으로서는 맞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 의원은 "친서민을 대변하는 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투쟁적 야당 이미지에서 벗어나 중산층으로까지 지지층을 넓히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당내 중도파 중진 의원들도 "중도 서민층 정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지도부의 안이한 친서민정책 대응을 질타하고 나섰다. 강봉균 의원은 "중산층이 신뢰하려면 과거의 '좌파정당'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미디어법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생활정치 이슈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장선 의원은 "서민이슈를 선점당한 데 상당수 의원들이 부담을 갖고 있다"며 "그동안 정치이슈에 함몰돼 제 1야당으로서 챙겨야 할 서민 중산층 정책은 물론 녹색성장,환경문제 등에도 소홀했다"며 지도부의 자성을 촉구했다.

서민 기반이 흔들리는 데 따른 당내 반발여론이 커지면서 일각에서는 정세균 대표 주변 당권파들의 지나친 투쟁노선을 문제 삼고 있다.

한 의원은 "대표 주변 당권파들이 정책 대안보다 투쟁적 시각에서 당의 노선을 강경모드로 몰아가는 경향이 없지 않다"며 "서민정당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당의 무게중심을 중산층과 서민의 피부에 와닿는 대안정책 발굴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