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정책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위기 때 풀어놓은 돈을 회수하고 금리를 올리는 본격적인 출구전략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한 것이다. 이제 언제,어느 정도의 폭으로 한은이 금리를 올릴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장참가자들은 연말 안에 한은이 금리인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일단 0.25%포인트씩 한두 차례 올리고 난 뒤 상황을 살펴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전략팀장은 "이 총재가 금리인상에 대한 당위론과 선진국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은 연내 금리인상을 시사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 총재는 10일 기자회견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 저금리로 인해 부동산시장이 불안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택가격이 몇 달째 오르고 있는 것도 문제이며 주택을 사기 위해 담보대출을 받는 것도 역사적 저금리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특히 "부동산 등 자산 쪽에 거품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봐야 한다"고 까지 말해 당초 내년 초 이후 금리인상 가능성을 관측하던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SK증권은 아예 오는 11월께 금리가 인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진모 SK증권 연구원은 "3분기 경제성장률이 10월 하순께 나오는데 한은의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전 분기 대비 1% 이상이 나올 전망인 데다 공개시장조작 대상증권 확대조치가 10월 말 끝나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은 11월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총재도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은 3분기를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이 총재의 강성 발언에도 불구하고 실제 금리 인상은 내년 초 이후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된 게 이달 초인데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를 보려면 4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며 연내 인상 가능성을 낮게 봤다.

연내 금리 인상이 가시화할 경우 출구전략 시행이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는 정부와 갈등이 빚어질 소지도 크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은 천천히 단계적으로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세계경제가 여전히 불확실해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만큼 큰 폭의 인상은 힘들 것"이라며 "0.25%포인트씩 한두 차례 금리를 올리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에선 일단 연 2%인 기준금리를 연 3.0~3.25% 수준까지 올려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총재가 금리인상을 강하게 시사함에 따라 이날 금리가 폭등했다. 채권시장이 기습펀치를 맞고 초토화된 형국이다. 국고채 3년물 유통수익률은 0.21%포인트나 치솟아 연 4.50%를 기록했으며 국고채 5년물 금리는 0.15%포인트 뛰어 연 4.96%에 마감했다. 신용등급 BBB-급 무보증 회사채 금리도 0.17%포인트 올라 연 11.86%를 나타냈으며 91일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0.01%포인트 상승해 연 2.58%를 기록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