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글로벌 위기 1년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설비투자 부진과 소비 둔화가 지속 성장의 최대 과제로 남아 있지만 국가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올라갔고 플러스 성장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이명박 정부 경제팀의 역할이 새삼 조명받고 있다.

◆1기팀의 과감한 유동성 확대 정책과 고환율 정책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전광우 금융위원장-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이어지는 1기 경제팀은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의 토대를 닦는 데 여념이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종합부동산세 손질과 세금 감면.이 와중에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를 맞은 강만수팀은 신속하게 유동성 확대 조치를 취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4개월 만에 연 2.0%로 3.25%포인트 내렸다. 또 공개시장조작,한은 총액대출 한도 확대,통화 스와프 체결 등을 통해 27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한 데 이어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10조원을 투입했다. 신용 경색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2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도 조성했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위기 이후 다른 국가보다 국내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을 찾은 것도 신속한 대응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초기에 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경제팀 내부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환율(값싼 원화 가치)을 유지하기 위한 강 장관의 고집스러운 노력은 키코(파생금융상품)사태의 원인 제공자라는 비난을 샀다. 하지만 고환율은 수출기업들의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져 올해 플러스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1기팀을 가장 괴롭힌 것은 금융회사의 유동성 위기를 수시로 보도한 외신이었다.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과도해 자칫하면 금융회사가 부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외신의 공세에 경제팀의 대처는 미숙했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를 맺어 반전을 이뤄냈지만 미네르바 사태(인터넷 필자의 경제위기 공격)로 엉뚱한 고생을 치러야 했다. 위기 조짐 속에서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까다롭게 구분했던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을 고치고 산업은행민영화법을 통과시켰다.

◆2기팀의 재정 확대와 정책 공조

경제가 끝모를 바닥으로 치닫던 지난 2월 바통을 이어받은 2기팀(윤증현 재정부 장관-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총재-윤진식 수석)은 1기팀이 깔아 놓은 레일 위에서 속도를 더 냈다. 대표적인 게 나라 곳간을 확 열어버린 것.윤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사상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28조4000억원)을 편성,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쏟아부었다.

1기팀이 위기 탈출에 치중하느라 등한시했다는 기업 구조조정에도 박차를 가했다. 9개 대기업그룹에 대한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체결했고,건설 · 조선 · 해운 등 부실 업종 및 개별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부실 채권 매입을 위한 40조원 규모의 구조조정기금도 설치했다.

윤증현팀은 강만수팀이 터를 잘 닦아 놓은 데다 더 이상 나빠질 구석이 없는 시점에 바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는 평가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저점에서 주식을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그는 "정책을 펴면서 경제팀 내 불협화음이 거의 없을 만큼 공조가 잘 이뤄진 점도 경제 회복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2기 경제팀은 1기팀이 부족했던 시장과의 소통에도 원활하게 대처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과제

1,2기팀의 노력으로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올라선 만큼 위기 이후 대응 전략 마련에도 치밀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그동안의 정책이 위기 수습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나 중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장 잠재력 확충 등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간기업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경제 정책에 변화가 올지가 또 하나의 관심사다. 중도강화론과 함께 등장한 서민 위주 정책은 복지 재원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MB노믹스의 기본인 감세 정책을 흔들 공산이 크다. 고소득자에게 이미 약속했던 세율 인하를 유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정종태/박준동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