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분 또는 경영권을 인수한 후 기업가치를 높여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사모투자펀드(PEF)가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소형 매물에 투자하려는 PEF가 최근 급증, 2004년 12월 도입된 지 4년9개월 만인 이달 100개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에선 PEF 투자 대상을 기업 경영권만이 아니라 재무구조 개선으로도 확대하는 '기업재무안정 PEF'가 이번 국회에서 도입되면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분석이다. 재무안정 PEF는 종전과는 달리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지 않고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거나 부실채권 전환사채(CB)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신종 사모펀드다.

◆기업 구조조정에 나름 역할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PEF 등록 건수는 지난달 말 95건을 기록한 데 이어 현재 5건 이상이 심사 중이어서 이달 중 100곳을 무난하게 넘어설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위기 여파로 올해 4월까지는 PEF 설립이 1개뿐이었지만 최근 들어 구조조정 시장을 노린 소형 PEF 설립이 줄을 잇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5건의 PEF를 심사 중이며 지난 7월 국민연금 위탁사로 선정된 6개 PEF들도 속속 신규 등록할 예정이어서 이달 말엔 누적 등록 건수가 100개를 돌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PEF는 2004년 12월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이후 △2005년 14개 △2006년 12개 △2007년 19개 △2008년 32개 등에 이어 올해엔 8월 말까지 16개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국내 PEF는 선진국과 달리 투자 대상과 지분취득 요건 등에 제한을 받으면서도 국내 M&A(인수 · 합병)나 구조조정 시장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투자 수단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평가했다.

작년 금융위기 이후 PEF는 기업구조조정 시장에서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국내 최대 PEF인 MBK파트너스가 작년 11월 두산테크팩을 4000억원에 인수했고,올해 6월에는 두산의 새로운 구조조정에 미래에셋PEF와 IMM프라이빗에쿼티는 2700억원을 투자했다. 산업은행도 지난 5월 '턴어라운드PEF'를 조성해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장외 중소기업 썬스타특수정밀에 400억원을 투자했다.

현재 의원입법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기업재무안정 PEF'관련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서 PEF 역할이 한층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대형 토종펀드' 육성 취지 무색

하지만 외국 자본에 대한 대항마로서 토종자본을 육성하겠다는 도입 취지와 달리 '빅딜'이 아닌 '스몰딜'을 겨냥한 100억~200억원대 소형 PEF가 대부분이어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올 들어 등록된 PEF 16곳 가운데 8곳은 출자자들이 투자 자금을 약속한 약정 규모가 300억원 미만이다. 200억원대는 4곳,100억원대가 3곳이며, 1곳은 50억원짜리다. 이 때문에 올해 등록 건수는 14개였던 2005년보다 많지만 약정금액은 1조6800억원으로 2005년 4조1100억원에 크게 못 미친다. PEF를 운용하는 주체가 PEF 전문회사나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에서 창투사 캐피털사 등으로 확대되면서 비롯된 일이다.

김형태 원장은 "초대형 외국계 PEF가 국내 M&A시장에 몰려들고 있지만 국내엔 소형 PEF가 대부분이어서 경영권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높여 매각해 대형 토종자본을 육성한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대형 PEF 운용사 관계자는 "정부가 구조조정 기업들의 경영권을 보장해주고 있는 데다 아직 국내 PEF의 투자 경험이 미진한 탓이지만 소형 PEF가 득세하는 것은 사실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아직 뛰어난 투자성과(레코드)를 내놓은 PEF가 거의 없어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추가 투자를 꺼리고 있는 점도 PEF 소형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PEF가 성장하고 있지만 투자할 만한 성과가 없어 아직 신뢰하긴 이르다"며 "이 때문에 금융위기가 불거진 이후로는 PEF에 거의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또 PEF를 설립만 해놓고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다반사여서 PEF 실제 투자금액은 약정금액 16조2600억원(8월 말 기준)의 절반 수준인 8조원대에 불과하다.

김 원장은 "PEF 투자자 모집을 국내 정부기관이나 대형 금융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중국 미국 등 해외로 다변화하고 글로벌한 시각에서 해외 기업 투자에도 나서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