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멘토'인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69)은 14일 "정 후보자는 자기 소신의 30% 정도는 죽이고 대통령에게 직언해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총리가 해야 될 역할은 어디까지나 '조언'인 만큼 대통령이 국정을 펴는데 평소 소신을 70% 정도만 직언하라는 뜻이다. "물론 직언하는 게 어디 쉽겠어요. 그러니까 30% 정도는 뜻을 죽이고 화합형 총리 역할을 해야죠."

김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서는 "이 대통령이 정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데려갔으면 100% 활용해야 한다"며 "만약 장식품처럼 총리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면 정 총리도 실패하고 대통령도 실패한 인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이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고 민정당 의원 시절이던 1986년 전두환 정권 때 직선제 개헌을 주도하던 정운찬 당시 서울대 교수를 해직 위기에서 구명해주면서 23년 인연이 시작됐다. 정 후보자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늘 그를 찾았다. 김 전 의원은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 후보자가 총리직을 수락하는 과정을 소상히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총리직을 제의받고 고민하던 정 후보자에게 "일단 가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은 "(4대강,세종시,감세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평소 많은 얘기를 나눴기 때문에 정 후보자가 현 정부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걸 잘 알지만 경제학자로서의 소신과 국무총리로서의 소신은 달라야 하지 않나"라며 "청와대에서 이상한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기에 그런 것 구애받지 말고 일단 가서 뜻을 펼쳐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청와대가 (세종시 등) 조건을 걸었든 안 걸었든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수도이전 위헌판결로 나온 게 세종시인 것처럼 대운하가 국민적 저항을 받아서 나온 게 4대강인 만큼 경제적으로 보면 세종시,4대강 모두 똑같은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며 "내년 예산 중 과연 4대강이 그렇게 시급한 사항인지 검토하는 과정에서 정 후보자가 자기 의사 표시를 하면 되기 때문에 (조건)신경쓰지 말고 다 받고 들어가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내정자는 이 대통령이 중도실용으로 국정기조를 바꾸면서 택한 카드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 중에는 중도서민정책에 해당되는 인물을 고르기가 어렵다"며 "그동안 대통령에게 좀 비판적인 관점을 보여온 사람을 택하는 게 오히려 긍정적인 면이 많을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 후보자에게) 약점이 있다면 마음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대통령이라는 권위에 순종을 너무 많이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나라 일을 제대로 하려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얘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야당이 정 후보자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하는 데 대해선 "괜히 말로만 그러는 거지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 바쁜 민주당이 무슨 배신감을 느끼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준혁/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