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볶음탕 해먹기에는 프라이팬이 얕아서 재료가 넘쳐요. 좀 깊은 제품을 만들어 주세요. " "콩국수 해먹을 때 국물만 따라내기 힘들어요. 블렌더에 거름망을 붙여 주세요. "

살림 감각과 눈썰미가 뛰어난 한국 주부들이 주방기기 업체들에 쏟아낸 요구사항들이다. 실제로 휘슬러(독일),테팔(프랑스),밀레(독일),필립스(네덜란드) 등 세계 유수 업체들은 이런 요구들을 반영한 '한국형 주방기기'로 세계 각지에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고규정 휘슬러코리아 이사는 "한국 주부들은 제품의 로고 색깔이나 손잡이 고무패킹의 주름이 조금만 바뀌어도 전화를 걸어올 만큼 꼼꼼하고 적극적"이라며 "한국에서 성공하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제품 아이디어의 보고(寶庫)이자 테스트 마켓인 셈이다.


세계 1위 업체인 휘슬러의 냄비라인 중 뚜껑을 좀 더 높인 '프로 스튜팟'(37만~66만원)은 유럽 레스토랑 셰프들 사이에 인기가 높고 최근 중국에 출시돼 대박을 쳤다. 본래 이 냄비는 찜 · 전골 · 국을 즐기는 한국인을 위해 개발됐다. 휘슬러는 또 '압력솥 용량이 너무 크다'는 한국 주부들의 지적에 따라 아예 독일 공장에 소형 '솔라 압력솥'(1.8ℓ · 58만원) 생산라인을 갖추고 일본 중국에도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출시한 '아시아 웍팬'(19만8000원)은 '볶음 · 조림요리를 할 때 재료가 넘친다'는 한국 주부들의 불만을 수용한 프라이팬이다.

테팔의 '뉴엑셀리오 컴포트 콤보 그릴'(31만2000원)은 자작한 국물이 있는 전골구이용 전기그릴로 한국 주부들의 요구로 탄생한 제품이다. 테팔 본사가 있는 프랑스를 비롯해 독일 러시아 포르투갈 동남아에서도 인기다.

필립스전자의 '미니블렌더 HR2870'(8만7000원)은 "콩국수처럼 잔여물이 남는 음식을 만들 때 국물만 따라내기 힘들다"는 불만을 수용해 거름망을 장착했다. 거름망 장착 제품이 국내에서 대박이 나자 필립스는 대부분의 블렌더에 거름망을 적용,세계 각국에 판매하고 있다.

밀레의 식기세척기 'G1000시리즈'(195만~325만원)는 수저 전용 3단 바구니를 장착했다. 기존 식기세척기는 수저가 밖으로 삐져나와 불편하다는 한국 주부들의 민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