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상이 제일 좋습니까?”
내게 이렇게 묻는 분들이 계신다.
“관상보다는 심상(心象)이 중요합니다.”
비단 이런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과연 마음을 본 사람이 있는가. 그러니 ‘심상’이란 말은 단지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을 수 밖에.

나는 심상에 대해 다른 정의와 방도를 권한다.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야말로 심상이라고.

내가 젊은 시절, 부산에서 살던 때다. 부산 자갈치 시장을 거닐던 중, 한 아주머니가 아주 멋진 정장을 입고 지나가기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그녀는 자갈치 시장에서도 명물로 손꼽혀 '자갈치 아줌마'란 닉네임을 갖고 있던 여인.

그 유명한 자갈치 아줌마가 잔뜩 멋을 부리며 맞은편에서 걸어오자, '과연 저 아주머니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하며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녀와 교차되던 찰나, 화려하게 빼 입은 자갈치 아줌마 몸에서 나는 냄새는 다름 아닌 오리지널 자갈치 냄새, 그 자체가 아닌가.

아줌마는 하루종일 자갈치만 만지는 것이 지겨워 단 하루 멋지게 옷을 차려 입고 외출을 나가려 했으나, 아무리 향수를 뿌리고, 또 뿌려도 자갈치 비린내만큼은 숨길 수 없었던 것이었다. '원판 불변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순간,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다. 자갈치 냄새보다 더 지독한 것은, 그 냄새만큼이나 독하게 살아온 아주머니의 마음이었던 것.

그런데, 얼마 전, 나는 뜻하지 않게 제2의 자갈치 아줌마를 법당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강남에서도 알아주는 상류층에 속한 여성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장식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얼굴 자체도 아주 유명한 성형외과에서 수술받은 '명품'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녀의 아리따운 몸에서는 탁하고 추한 기운이 절절히 흐르는 통에 그녀의 미색은 온데 간데 없었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한 유부남을 열렬히 사랑해 그와 본처를 이혼시킨 뒤, 그의 어린 자식들과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험하게 싸우는 등,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거듭해왔다. 그러면서도 내 앞에서 서글피 울면서 "정말 나쁜 애들이에요, 제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떻게 저를 무시할 수 있어요?"라고 반문하는 그녀에게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잘못한 바를 얘기해봤자 자기 자신을 단 한번도 반추(反芻)해 본 적 없는 이가 반성이나 제대로 할까. 이 모든 것이 다 '환경' 탓이거늘.

사실, 연탄가게 앞에 있으면 아무리 깨끗한 이도 연탄재가 묻기 마련이듯, 인간은 환경에 따라 때론 추하게, 때론 아름답게 변해간다. 그 변화의 원천은 마음이기에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모르고 살아가다가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새삼 놀라고 만다. "어, 내 얼굴이 왜 이러지?"

심상의 흔적은 고스란히 관상에 나타난다. 잘 생각해보면 관상은 없을지 모른다. 순간 순간 표정의 연속이 관상이니, 순간의 표정이 아름다워야 관상이 좋고, 관상이 좋아야 심상이 좋은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뭐니 뭐니 해도 그 어떤 환경일지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줄 아는 이가 가장 아름다운 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한다. 길을 걸을 때는 길손처럼, 산에 오를 때는 나무꾼처럼, 논밭을 지날 때는 농부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여러분들께서도 거울보고 놀라고 싶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복된 생각을 품고, 남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도록 노력해보시면 어떨는지.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마음의 성형수술이기에.(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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