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신용위기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월가 금융사들입니다.

미 정부가 대규모 구제금융을 지원해 뱅크런을 막았지만 월가 은행들은 아직도 적지 않은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무엇보다 자산쪽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는데요.씨티그룹,뱅크오브아메리카(BOA),월스파고 등 전통적으로 예대업무 비중이 높은 은행들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로 자산 상각이 이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됐습니다. 중장기적인 수익 전망도 좋지 않습니다.먼저 대출을 포함한 자산 부실화로 연체율 및 대손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2분기 말 현재 미 대형은행의 연체율과 대손율은 각각 6.2%,2.6%로 1990년대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10월말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증 시한이 끝나면 조달 여건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경기 회복에 따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예대마진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감독 개혁도 또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했듯이,연방정부는 또 다른 금융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은행의 필요자기자본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입니다.자기 자본 규제가 강화되면 은행들은 대출여력이 감소해 돈벌기가 그만큼 어려워지게 됩니다.게다가 미국 경제가 회복된다고 해도 미약한 성장세를 기록할 경우 은행의 수지 기반은 약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월가 금융사들은 공포에서는 벗어났지만 리먼 사태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바마 금융개혁 용두사미되나.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오바마 정부의 금융개혁작업이 순조롭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리먼 사태가 발생했을 때만해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곳으로 흩어진 감독기구를 통합하고,월가의 방만한 보수체계를 바로 잡을 계획이었습니다.하지만 금융시장이 조금씩 정상화되면서 월가 은행들이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이들은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대주면서 막강한 로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금융개혁은 이미 정치적인 이슈가 됐는데요.

금융감독기구 간 밥그릇싸움도 적지 않습니다.연방 정부는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FRB에 막강한 권한을 주는 쪽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이에 대해 미 연방예금보험공사는 감독 사각 지대가 생길 것이란 이유에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자칫 잘못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지적했듯이 금융사가 감독 기관을 쇼핑하는 문제조차 풀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은행산업은 신용을 공여하고 여러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개혁 작업을 거칠게 밀어붙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자칫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오바마 정부의 금융개혁작업은 월가 금융사에 유리한 게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