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은 창사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회사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화장품,합성세제,PVC(폴리염화비닐) 등 주력상품을 바꿔가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왔다. 최근에는 노트북용 전지사업을 토대로 자동차용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들어 GM 현대자동차 등과 장기납품 공급계약을 맺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한 계열사 고위 관계자는 "LG화학 출신인 내가 봐도 회사가 어떻게 이렇게 잘나가는지 미스터리하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화학 계열사의 한 CEO(최고경영자)도 "LG화학은 시장의 흐름에 따라 미래 포석을 두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한다.

LG화학 미스터리의 이면에는 1996년 도입된 LG화학의 사내인재 육성제도 HPI(high potential indivisual)가 있다. 사내에서 A급 인재를 키워내 미래사업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인재육성 전략이 LG화학의 저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3단계 인재육성 전략

LG화학 인사제도의 출발인 1단계는 핵심인재 선발이다. 우선 사무기술직 중 대리에서 차장급을 대상으로 근무성적과 어학실력이 우수한 사람 5%가량을 뽑는다. 현업 부서가 추천하면 전체 회사 차원에서 인재개발협의체 심의를 거쳐 최종 대상자를 선정한다. 이 제도를 운영하는 목적은 차세대 비즈니스 리더를 일찌감치 발굴,육성함으로써 리더십의 지속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졸업하면 팀장급 이상 직책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현업에서 자신의 사업역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2005년부터는 1년차에는 매니지먼트 기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주고 2년차에는 어학코스를 밟게 하며 3년차에는 해외 유수의 대학을 방문해 세계적 석학들과 토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간 업무역량에 대한 세밀한 평가가 이뤄진다. 3개년 평균 B 이하의 점수가 나오면 핵심인재 풀에서 제외된다.

LG화학 관계자는 "2006년부터 선발 및 육성과정에 임원급과의 면담도 집어넣었다"며 "눈에 보이는 평가뿐 아니라 스스로 전문가로서의 식견과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2단계는 전문화 교육이다. LG화학의 사업이 글로벌화됨에 따라 해외 비즈니스의 적임자를 조기에 발굴,육성하기 위해 전문화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MBA나 지역전문가 제도,해외법인장 제도 등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며 이들에게는 각각의 상황에 맞는 과감한 도전 과제를 부여한다.

마지막 3단계는 계승 프로그램(Succession Plan)이다. 차세대 리더를 선별,최고경영자 후보군을 정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팀장급 이상의 자리에는 현 인원을 대체할 수 있는 후계자를 미리 선정함으로써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고 조기에 인재를 육성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에 누가 선발됐는지는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진다.

LG화학은 매년 한 번씩 포스트별 승계자를 선정한다. 포스트는 사업부장급,팀장급,해외지사장 등을 뜻한다. 포스트별로 정해져 있는 핵심업무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리더십과 전문성 위기대응능력 등도 갖춰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발된 인원은 통상 포스트별로 2~3명이다. 이들은 '경주마 방식'으로 경쟁을 벌이고 최종 승자가 임원 자리에 오르게 된다.

◆HPI 제도의 성과

HPI는 기업 구성원들이 역량만 갖추면 얼마든지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제도란 평가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높이고 업무 효율성도 향상시킨다. 이들은 특히 해외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말 기준 해외주재원 사무직 중 33%가 HPI 출신이다.

LG화학 내부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HPI에 뽑힌 인원은 일반 직원들에 비해 이직 의사가 적다. 교육과정을 통해 자기역량을 충분히 계발,회사로부터 핵심인재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직장을 옮기고 싶은 욕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전체 수출 비중이 70%가 넘는 회사 입장에서 글로벌 감각을 갖춘 리더를 조기에 양성하는 것은 사실상 회사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것"이라며 "실제 해외 비즈니스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임원 상당수가 이 과정을 통해 양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HPI 제도의 단점도 있다. 일찌감치 '진골'과 '성골'을 구분,HPI로 선택되지 못한 직원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심어줄 수 있다. HPI 출신에게 핵심 업무가 지나치게 몰리고 HPI 출신들을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HPI 이외의 직원들도 적어도 3년에 한 번은 해당 부문장들과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상담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준/송형석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