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이 내달부터 기존 직원의 임금을 5% 삭감하기로 했다. 또 연차휴가 소진 등을 통해 총 인건비의 10%를 감축하기로 했다.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 주택금융공사 등 금융공기업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이 같은 내용으로 임금개편 작업을 추진키로 했다. 노조와의 임금 협상이 타결되지 않더라도 10월 급여부터는 삭감된 급여를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강력히 추진 중인 노사관계 선진화 정책의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는 고임금 구조의 개편"이라며 "이를 근거로 기관 및 기관장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예산 배정에도 반영한다는 게 정부 방침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융공기업의 급여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만큼 일시적인 반납이 아닌 삭감을 통해 실질적인 급여체계의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국책은행을 포함한 20개 금융공기업의 평균 연봉은 7400만원으로 전체 297개 공공기관의 평균 연봉 5500만원보다 34.5%나 높다.

노사협의 대상이 아닌 신입직원의 경우 대부분 금융공기업이 취업규칙을 개정,20% 임금 삭감을 결정한 만큼 기존 직원에게도 형평성을 맞춰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사실상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임금삭감 움직임에 대해 각 회사 노조마다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실제 시행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이 예상된다.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5% 반납에 노사합의했으나 금융당국의 질책으로 이를 긴급히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면서 사실상 노사협의가 중단된 상태다. 산업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등도 사측의 삭감요구에 동결 내지 반납을 주장하는 노조 간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자리를 걸고' 임금삭감을 관철시키라는 방침인 반면 노조는 일방적인 삭감시 쟁의행위에 들어가겠다는 주장이어서 경영진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산별노조인 금융노조는 정부가 개별 노사관계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산별교섭과 노사 간 자율협상이라는 틀을 무시하고 있다"며 "절차적인 정당성을 갖추지 않는 것은 물론 기관과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 잣대로 일률적인 삭감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중은행의 올해 임금 협상은 삭감이 아닌 반납 형태로 속속 타결되는 분위기다. 금융노조와의 산별교섭이 무산되면서 산하 지부별 협상으로 전환된 이후 시중은행은 기존 직원 임금 5~6% 반납,연차휴가 50% 의무사용,신입직원 20% 삭감 등에 대부분 합의한 상태다. 외국계 은행의 경우 SC제일은행이 올해 초 임금동결에 합의,협상을 종결했으며 씨티와 외환은행은 협상이 진행 중이다.

이심기/이태훈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