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HA(가전) 사업본부는 지난달 양문형 냉장고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리니어 컴프레서(냉장고의 냉매를 압축하는 장치)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컴프레서를 구동하는 전자 칩을 공급하는 일본 NEC가 사전 예고 없이 공급 물량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한 것이 발단이었다.

LG전자의 냉장고 중 리니어 컴프레서가 들어가는 프리미엄 양문형 냉장고의 비중은 30~40% 선에 달한다. NEC가 통보한 대로 칩 공급 물량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면 매출 감소는 물론 거래선들과의 신뢰 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LG전자 경영진은 부랴부랴 NEC와 협상을 벌여 급한 불을 껐지만 필요한 수량만큼의 구동칩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양문형 냉장고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NEC와 추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3M 없이는 LED TV 못 만든다?

부품과 소재는 한국 전자산업의 아킬레스건이다. 핵심 부품이나 소재 중 상당수를 일본이나 미국 업체에 의존하다 보니 생산라인을 세워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자주 빚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한두 곳의 해외 업체가 기술을 장악하고 있는 부품이나 소재를 제때 필요한 수량만큼 조달하는 게 부품 구매부서의 역량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라며 "가격이 비싸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품을 구해 와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LED(발광다이오드) TV도 양문형 냉장고와 상황이 똑같다. 삼성과 LG의 전자계열 부품업체 구매 담당자들은 최근 일주일에 3~4번씩 한국 3M 공장을 찾는다. LED TV 부품 중 하나인 DBEF(이중휘도향상필름)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다. 한국 3M이 지난달 17일 파업을 벌인 이후 DBEF 구매 전쟁이 한층 치열해졌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DBEF는 TV의 광원(光源) 역할을 하는 백라이트유닛(BLU)에 부착하는 필름으로 LED등에서 나온 빛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업계 관계자는 "DBEF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업체는 전 세계에서 3M 한 곳뿐"이라며 "생산량만큼의 필름을 받아오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신화인터텍,웅진케미컬 등이 대체품을 만들었거나 개발 중이지만 3M 제품에 비해서는 품질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2차전지,겉은 '코리아',속은 '재팬'

산요 소니 등 일본 경쟁업체들을 제치고 해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2차전지(리튬이온전지) 분야 역시 핵심 소재의 국산화 비율이 50~60%에 불과하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등 크게 4종류로 나뉘는 2차전지 핵심 소재 중 음극재는 일본에서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국내 2차전지 산업이 완성품에서만 경쟁력을 보유하고 핵심 소재는 일본에 의존하는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차전지를 포함한 전자제품용 소재 시장에서 일본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66%에 달한다.

LG전자 리니어 컴프레서 구동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시스템 반도체도 첨단 소재와 더불어 한국 기업들의 약점으로 꼽힌다. 디지털 TV 방송수신용 칩이 또 다른 사례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TV 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하지만 디지털 TV용 칩은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지난해 무역적자가 7억달러(약 8500억원)에 달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완제품과 부품 · 소재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전자산업의 주도권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