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18살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소녀가 8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러면서 우승자 카스터 세메냐(18)의 성별 논란이 일어나,자칫 금메달을 박탈당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세메냐는 남녀의 생식기를 모두 갖고 있어 '100% 여자'는 아니라는 정보가 새어나왔다. 강한 이목구비와 우람한 복근,저음의 목소리 때문에 이미 의심을 받아왔던 그녀는 남아공 북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여자 아이로 길러졌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한 용어로 이런 사람을 서양에서는 hermaphrodite라 부른다. 미모의 남신 헤르메스(Hermes)와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즉 Venus)를 합성해 만든 단어인데,지금은 파리 루브르,마드리드의 프라도 등 유럽의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에 그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우리 역사에도 이런 기록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1462년(세조 8년) 4월27일 이후 여러 차례 <실록>에 기록된 사방지(舍方知) 사건이다. 여장한 사내가 과부와 통한다는 소문을 조사한 의금부는 과연 그가 남성을 갖추고 있음을 발견했다.

"머리의 장식과 복색은 여자였으나 형상과 음경 · 음낭은 다 남자인데,다만 정도(精道)가 경두(莖頭) 아래에 있어 다른 사람과 다를 뿐"이란 승지의 보고가 세조에게 들어갔다. 사헌부까지 나서서 철저한 조사를 주장했으나,임금은 "사방지는 병자이니 추국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있다. 끈질긴 조사 주장이 되풀이됐지만,세조는 사방지와 통했다는 과부 이씨가 이순지의 딸이고,그 여자의 아들은 정인지의 사위였다는 사실 때문에 처벌하기 난감했던 모양이다.

이순지(1406~1465년)는 세종대의 위대한 천문학자,정인지(1396~1478년) 역시 세종 때의 대학자다. 부왕(父王) 때부터의 명신을 보호하려던 세조였지만,1465년 6월 이순지가 죽자 2년 뒤(1467년 4월) 결국 사방지는 다시 주목받게 됐고,신창현(지금 충남 아산시 신창면)의 노비로 쫓겨났다. 풍속을 더럽힌 혐의로 죽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죽음은 면하고 멀리 귀양가게 된 셈이다.

그 후 1548년(명종 3년) 11월 함경 감사가 "길주 사람 임성구지는 양의(兩儀)가 모두 갖추어져 지아비에게 시집도 가고 아내에게 장가도 들었으니 매우 해괴합니다"하는 보고를 올렸다. 조정에서는 사방지 사건을 참고해 그를 외진 곳에 따로 살게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사방지 사건 당시 32살의 학자였던 김종직(1431~1492년)은 이에 대한 시를 남겼다. '비단옷 깊숙이 몸을 감춰 오다가(縫羅深處幾潛身)/ 치마 비녀 벗으니 참모습 드러났네(脫却裙釵便露眞)/ 예부터 조물주는 변환술에 능하여(造物從來容變幻)/ 세상에는 음양을 구비한 사람도 있구려(世間還有二儀人).'

그 후 이의인(二儀人=兩性人) 사방지에 대한 특이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글에 인용되고 있다. 이긍익(1736~1806년),박지원(1737~1805년),이규경(1788~1856년) 등까지 계속 화제가 됐다.

이렇게 인간 자신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우리는 인간의 몸조차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거듭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 둘이 전혀 다르게 존재하는 듯하지만,사실은 그 경계조차 모호함을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조물주의 섭리에 따라 이 세상에 던져졌다.

남녀의 성징(性徵)이 보통보다 특이하게 섞인 채 태어났다하여 차별받는 세상이 돼서도 안 될 것 같다. 세조가 말한 것처럼 이는 일종의 병일 수도 있지만,김종직의 시구에 보이듯 이 모두가 조물주의 조화인 것을….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 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