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이 12년간 학교에서 받은 상장 45개입니다. 꼼꼼히 살펴봐 주세요. "(명덕외고 3학년 재학생 학부형 권모씨)

"일일이 확인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우선 제출하신 상장 이름과 종류,개수를 제출 목록표에 기입해 주세요. "(고려대 입학처 직원)

지난 14일 주요 대학이 2010학년도 수시모집 입학원서 접수를 마감한 데 이어 15일 본격적인 지원서류 접수를 시작하면서 접수 창구마다 수백 장의 관련 서류를 준비해온 학생과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접수 창구의 직원들은 산더미처럼 쌓이는 제출 서류를 앞에 놓고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각 대학 접수 창구에는 12년간 쓴 일기장을 통째로 라면상자에 담아 택배로 접수한 학생,세계여행을 하며 찍은 앨범 3권을 간이 손수레에 싣고 온 학부모 등도 눈에 띄었다. 올해 입시에서 대폭 확대된 입학사정관제로 인해 단순히 입학원서,생활기록부 등 몇 가지 서류만 제출하던 예전 접수 창구와는 크게 달라진 풍속도다.

자녀들을 대신해 서류 접수를 하러 온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창시절 활동을 증빙할 서류들을 두 손으로 안고 접수 순서를 기다리기도 했다. 이날 고려대에서 접수를 마치고 나온 학부모 권씨는 "상장을 포함해 학업성취도평가,봉사 · 동아리활동 내역 등 준비한 서류만 1000쪽이 넘는다"며 "서류 준비에만 한 달이 넘게 걸렸지만 입학사정관제 전형인 학생부우수자 전형으로 접수를 하다 보니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성에 안 차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자녀의 출신학교를 소개한 신문기사 스크랩을 준비해 온 한 학부모는 직원으로부터 "이건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을 듣고 "입학사정관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할지 몰라 생각나는 대로 준비해 왔는데 막상 필요가 없다니 쑥스럽다"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준비한 것은 서류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오전 한국외대 본관 접수처에는 딸의 세계여행 사진을 나라별로 정리한 두꺼운 앨범 3권을 간이 손수레에 담아 딸을 대신해 직접 제출하러 온 어머니도 있었다. 한국외대 입학처 관계자는 "애니메이션학과 지원자들은 직접 제작한 CD를 제출하고 경영학부 지원자의 경우 벤처등록증이나 사업자 등록증,주식투자 실적 등을 제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날 중앙대 접수 창구를 찾은 김단비씨(19 · 베이징국제학교 3학년)는 "글로벌전형에 지원하기 위해 토플,토익,토픽,텝스,SAT,HSK 등 어학 관련 자격증만 10여가지를 가지고 왔다"며 "학창시절 노래동아리 활동모습도 사진에 담아왔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 입학처 사무실은 전국에서 배달돼 온 대형 박스로 인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서강대 사회통합전형에 지원한 학생이 보낸 박스를 열어 서류를 확인하던 이욱연 서강대 입학처장은 "택배로 접수되는 박스들이 밀려들고 있다"며 "서류 하나하나가 학생들의 정성인 만큼 분량이 많더라도 꼼꼼히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접수되는 물량이 넘쳐나면서 한양대는 일부 학생들이 각종 대회 입상 트로피 등을 제출할 것을 예상하고 아예 트로피는 받지 않는다고 공고하기도 했다. 한양대 입학처 관계자는 "트로피를 보여주고 싶은 학생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그걸 모두 받아 보관할 수 없다"며 "대신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제출 서류와 관련 자료들이 상자 단위로 접수되면서 대학 측은 크게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접수된 서류와 자료들을 분류 · 정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 자료를 일일이 검토하고 평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입학사정관들이 어마어마한 물량의 서류와 자료들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개 10~20명 수준인 입학사정관들이 과연 제대로 평가 작업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