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밤 총리로 취임해 17일 공식 집무를 시작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첫 일정으로 최대 노조단체인 렌고(노동조합연합)의 다카이 쓰요시 회장을 만났다. 렌고가 민주당의 유력 지지기반이긴 하지만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노조단체를 만난 건 이례적이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속상해 한 곳은 대표적 재계단체인 게이단렌이었다. 미타라이 후지오 게이단렌 회장(캐논 회장)은 최근 중국을 다녀와 후진타오 주석의 메시지를 하토야마 신임 총리에게 전달하겠다며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메시지는 실무선에서 전달했다.

노동계로 기울고 있는 하토야마 정권을 보는 일본 재계의 속앓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50여년간 자민당 정권과 '밀월 관계'를 맺었던 게이단렌은 상실감이 더욱 크다. 게이단렌은 하토야마 정권의 '재계와 거리두기'가 정책으로 반영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민주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온난화가스 배출 25% 감축'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이 현실화되면 기업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게 게이단렌의 주장이다.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하토야마 총리 등과 접촉해 재계의 입장을 전달하고 싶지만 면담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게이단렌 내부에선 자성론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2007년 기준 게이단렌은 자민당에 29억엔(약 380억원)의 정치헌금을 한 반면 민주당엔 8000만엔(10억원)밖에 안 줬다"며 "아무리 야당이지만 민주당을 너무 홀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민주당에 대한 정치헌금 등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민주당은 공약으로 "3년 안에 기업과 단체의 정치헌금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재계로선 민주당 정권과 친해질 기회를 잡기 어렵게 된 셈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