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갓 서른 살이 된 사진 · 영상 작가 앤드루 저커먼은 65세 이상의 명사들을 찾아 아홉 달 동안 3대륙을 돌아다녔다.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과 개럿 피츠제럴드 전 아일랜드 총리 등 국가원수들과 월레 소잉카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문화예술인까지 60명을 만났다.

아무리 촉망받는 사진작가이긴 해도 새파랗게 젊은 그가 이 쟁쟁한 인물들을 단기간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 영국국교회 대주교가 일일이 편지를 써준 덕분이었다. 무보수로 인터뷰에 응해준 이들은 명사이기 이전에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지혜로운 노인'이었다. 사진도 아무런 배경이나 소품 없이 온전한 자연인의 모습으로 찍었다.

《위즈덤(Wisdom)》은 그가 만난 60명 중 51명의 인터뷰를 126장의 사진과 함께 엮은 책이다. 60명 전원의 인터뷰 영상은 부록 DVD에 담았다.

등장 인물들은 1차 대전 언저리에 태어나 청년기에 2차 대전을 겪었으며 역사의 굴곡 위에서 21세기를 빚어낸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것은 헛된 명성이 아니라 사람과 일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었다고 말한다. 또 한결같이 야심차게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 대신 남을 배려하고 도우며 살라고 권한다.

귀에 보청기를 낀 채로 염화시중의 미소를 짓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눈에 보이고 의사가 고칠 수 있는 상처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훨씬 아픕니다. 남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은 쓸데없이 잔인한 운명으로 고통받게 하는 일이란 걸 알았습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라는 걸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또 나이가 든다고 어느 날 번쩍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것,그것이 인생이라며 우리 마음을 어루만진다.

얼마 전까지 미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유리천장을 부수는 데 기여한 사람이긴 하지만,자식과 손주들한테 나는 그냥 나예요"라고 말한다.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도 "명성은 섀도복싱 정도나 할 상대이지 온몸으로 씨름할 상대는 아닙니다. 이름이 알려질수록 그 명성을 앞질러 가세요"라고 조언한다.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무리한 야망을 키우지 마세요. 해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만 하면 커리어는 알아서 굴러갑니다"라고 위로한다.

이들이 사랑과 관용과 평화를 얘기하며 이 모든 것들의 총체를 '지혜'라고 부르는 것도 매력적이다. 이는 "우리가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우리의 경험,우리의 지혜"(데스몬드 투투)라는 말로 압축된다. 그러면서도 주름투성이의 '멘토'들은 한결같이 "나는 지혜가 뭔지 잘 모른다"고 손사래를 친다.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것에서 손을 떼고 맘 편하게 뒤로 물러나 절로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착각이 없더라고요. 노년이란 두 번째 사춘기더라니까요. "(남아공 작가 나딘 고디머)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