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고층 건물 사이를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닌다. 8차선 횡단보도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면 줄잡아 수백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뛰는 듯 길을 건넌다. '중국의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는 베이징 찐롱지에(金融街)의 아침 출근시간 모습이었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찐롱지에의 중심인 은행감독위원회 앞에 이르자 맞은편으로 '韓亞銀行(하나은행의 중국식 표기)'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은행의 현지법인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의 본부 건물이다.

하나은행이 중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것은 2007년 12월.현지 은행으로서 막 걸음마를 뗀 은행이 중심가에 본점을 둘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지성규 하나은행 중국법인 부행장은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 "중국시장에서 정면승부를 걸어 진정한 현지 은행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금융 중심지에 있어야 인지도도 높일 수 있고 중국 고객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점망 확대…중국인 고객 증가

하나은행의 중국법인 설립은 우리은행에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은행들 중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내 은행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13개 분행 및 지행을 갖고 있다. 홍콩 지점까지 포함하면 14개 점포다. 수도 베이징과 경제 중심지 상하이는 물론 외국계 은행들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 하얼빈과 선양에도 하나은행 간판을 걸었다. 북쪽으로는 동북 3성에서부터 남쪽으로는 홍콩까지 이어지는 '하나 금융벨트'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나은행 중국법인은 지난 7월 말 기준 총자산 103억6000만위안,순이익 870만위안으로 한국 은행들 가운데 실적이 가장 앞선다. 예수금 규모는 지난해 말 59억4000만위안에서 지난 7월 말 66억7000만위안으로 증가했다.

중국인 고객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다. 지난해 말 전체 고객 중 5.4%에 불과하던 중국인 고객(개인 및 기업) 비중은 지난 6월 말 11.6%로 2배 이상 높아졌다. 중국인 '개인'을 상대로 한 영업을 지난 4월 당국의 허가를 얻어 시작하면서 공격적으로 나선 데 따른 성과다.

◆중국인 RM 채용 후 예금 3억위안 유치

하나은행 중국법인의 감사를 포함한 상당수 요직을 중국인이 맡고 있다. 전체 직원의 93%가 중국인이다. 지난 5월에는 한국에서 진출한 은행 중 처음으로 중국인을 분행장으로 임명했다. 지점장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전원이 중국인인 지점도 전체 13개 중 4개나 된다.

하나은행은 중국인과 중국 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의 인적 네트워크와 경험을 활용하는 것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특히 기업금융에서는 중국 기업의 회계 관행이 한국과 달라 한국인 직원에게 대출심사 등을 맡기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하나은행 칭다오분행은 중국인 RM(기업금융 전담 직원)을 채용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다. 칭다오분행은 지난해 2월 이 지역 지방은행에 근무하던 중국인 RM을 영입,1년6개월 만에 중국 기업을 상대로 3억위안의 예금을 유치했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이 분행의 거래기업 중 중국 기업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중국 기업의 비중이 40%나 된다.

조장행 칭다오분행장은 "중국인 RM을 채용하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성과"라며 "중국의 대기업이나 국유기업 중에서도 하나은행과 거래하겠다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 특성 살린 직원 선발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상하이 구베이지행은 중국인 지행장과 한국인 개인영업부장이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중국인 대상 영업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중국 공상은행 출신의 잉준 지행장을 구베이지행에 영입한 동시에 한국에서 하나은행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남궁경미씨를 수소문 끝에 찾아내 개인금융을 담당하는 부장으로 채용했다. 중국인 직원만으로 지점을 운영하다가는 한국인 고객을 인근의 다른 한국 은행들에 모두 빼앗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구베이지역의 특성상 한국인 고객이 꽤 많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화 두산 대우인터내셔널 등 지점 근처에 지사를 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하나은행과 거래 관계를 맺었고 직원들의 급여이체 통장을 개설했다. 잉준 구베이지행장은 "한국인 직원과 중국인 직원이 서로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맡아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며 "한국인 직원들의 서비스 정신을 중국인 직원에게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