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항공사 노조가 공기업 최초로 대폭의 임금 삭감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17일 전해지자 노동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997년 국가가 부도위기에 몰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았을 당시에도 손대지 못했던 임금 문제에 노조의 합의를 얻어 처음으로 메스를 들이댄 만큼 공기업 전체의 `임금 카르텔'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는 공항공사의 임금삭감안이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침에 따라 노사관계에 대한 간섭으로 갈등이 증폭된 가운데 불거진 일이라서 노동현장 분위기에 중요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관계자는 17일 "아직 보고를 받지는 못했으나 예외적인 일이며 곤혹스럽다"라고 말했다.

연맹의 올해 임금협상 방침은 동결이나 삭감을 거부하고 최소 물가인상분만큼 임금인상을 쟁취한다는 것이었는데 돌출 변수가 생겨 난감해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연맹은 하반기에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속도를 내면서 공공운수 부문이 집중 표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다음달 말부터 총력투쟁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공항공사의 임금삭감 합의로 연대투쟁의 동력이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연맹은 공항공사의 임금삭감이 무리하게 진행된 만큼 파장이 공기업 전체로 확산하지 않을 것이라며 겉으로는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맹 관계자는 "정부 기관장 평가를 두고 사장이 성과를 내려고 노조를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공항 매각 문제 등과 연계돼 복합적 이유로 기관장이 과잉충성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다른 공공부문 노조에 미칠 파문에 대해서도 "예외적인 일이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소속 노조는 아니지만, 한국공항공사가 7%에 가까운 임금삭감안에 합의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의 지침 때문에 계속 공기업들이 위축되고 있어 큰일이다.

임금협약은 노사의 자치영역인데 정부는 임금수준을 낮추라고 노사를 옥죄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공기업 선진화의 선도역할을 하는 것처럼 성과를 과시하려고 임금삭감을 교묘히 홍보하려는 공기업 사용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국노총은 올해는 소속 사업장에 임금협약 지침을 내리지 않고 물가인상 등과 관련한 참고자료를 보냈으며 개별 사업장의 경영상황에 따라 임금을 동결ㆍ반납 또는 `절감'할 수 있다는 원칙만 세웠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