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자 뉴욕의 랜드마크인 타임워너 빌딩의 명물은 내부에 달려 있는 별 모양의 전등이다. 형형색색 무지개 빛을 발하는 이 전등은 다른 건물과 별다를 것 없는 이 고층빌딩에 판타지를 심어준다. 이처럼 조명을 바꾸는 것은 가장 손쉬운 인테리어 교체방법이다. 단순히 형광 불빛에서 은은한 백열 조명으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모한다. 더구나 조명은 그 자체로도 근사한 인테리어 소품 역할을 한다.

오늘 얘기하려는 대상이 바로 '디자이너들이 만든 조명'이다. 조명 하면 그저 바로크풍의 치렁치렁한 샹들리에만 연상하는 분들에게 디자이너 조명은 생경할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조명을 '오브제'라 생각하고,고객들은 아낌없이 조명에 투자한다. 의자,책상 심지어 도자기까지 두루 섭렵한 마당에 디자이너들이 거실,주방,침실에 놓을 조명기구에 눈길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구의 경우 멋을 잔뜩 부린 아르누보 스타일에서 스칸디나비아의 미니멀한 스타일이 유행하듯,최근 조명들도 역시 선으로 이뤄진 모던한 스타일이 각광받고 있다.

조명 디자이너로 첫 손가락 꼽는 사람이 '조명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잉고 마우러(Ingo Maurer)다. 1966년 조명에 관한 상식을 뒤엎은 명작 'Bulb'를 내놓은 뒤 그의 작품 상당수가 뉴욕현대미술관(모마 · MoMA)을 비롯한 유수의 뮤지엄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또 다른 이는 산업디자이너 마크 새들러(Marc Sadler)다. 그는 유수의 조명 브랜드에서 일했는데,그중에서도 감각적인 조명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포스카리니(Foscarini)'사를 위해 만든 심플한 테이블 조명을 기억해 둘 만하다. 조명에 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마크 새들러가 디자인했다거나 포스카리니사가 만들었다고 하면 가치를 인정받은 제품이라 여겨도 무방하다.

수많은 디자이너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브랜드로 접근하는 방식이 편리하다. 포스카리니뿐 아니라 덴마크의 '라이트 이어(Light Years)',이탈리아의 '플로스(Flos)''폰타나 아르테(Fontana Arte)''세라룽가(Serralunga)' 등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조명업체들이다.

획기적인 디자인의 조명들도 많이 있다. 특히 로돌포 도르도니(Rodolfo Dordoni)가 디자인한 '우토(Uto)' 조명이나,레스터 자이스(Lester Geis)가 1951년 디자인한 't-5-g' 조명,론 아라드(Ron Arad)의 2000년 작품인 도드레에 달린 천장 조명처럼 미래적인 자태를 자랑하는 조명들을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조명은 엄연한 산업 디자인의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선 기발한 아이디어의 조명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의 리프로덕트(모사) 제품들은 서울 청담동이나 논현동 가구거리에 들어선 '웰즈'(02-511-7911) 등 수입가구 전문점에서 구할 수 있다. 이런 제품이 부담스럽다면 '한룩스'(www.ehanlux.com)나 '필룩스'(www.feelux.com) 같은 국내 브랜드 중에서 골라보는 것도 훌륭한 선택이다.

현대 산업디자인풍의 조명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빈티지 조명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빈티지 조명은 누가 디자인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앤티크 가구처럼 하나 하나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을지로 조명거리의 소규모 앤티크 조명숍에서 구입할 수도 있지만 워낙 다양한 종류가 있고 같은 모델이라도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앤티크 조명으로 유명한 '키메라'(www.chimera.kr) 등에서 사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인테리어 소품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사용할 목적이라면 섣불리 검증되지 않은 모델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는 것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조명은 그 자체로 멋진 오브제인 한편,사람의 눈에 비치는 빛을 관장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적합한 조도와 눈부심 방지 등은 우선적으로 따져봐야 할 사항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타센(Taschen) 출판사의 '디자인 1000 시리즈' 중 조명편(1000 Lights)을 보면 20세기 초에는 귀족들이 썼을 법한 조명들이 인기를 얻었고,1950~80년대는 골재가 드러나는 산업디자인 조명들과 기상천외한 외모의 조명들이 대거 쏟아져나왔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컬러풀하면서 미니멀한 조명들이 주목받더니 2000년대 들어선 기하학적인 라인을 자랑하는 조명들이 뜨고 있다.

명심할 것은 조명은 철저히 인테리어의 부속적 소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실내 분위기와의 조화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조명 하나 때문에 모든 인테리어를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멋진 조명이라도 전체적인 느낌을 방해하고 혼자 튄다면 그건 없느니만 못하다.

김현태 월간 '데이즈드&컨퓨즈드' 패션팀장 kimhyeont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