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을 백지화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리셋(재설정)'해 핵군축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이란의 핵 개발에 보다 효과적으로 공동 대응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MD 구축 예정지였던 체코와 폴란드는 러시아로부터의 잠재적인 안보 위협에 불안과 실망감을 표시했다. 미 공화당은 반발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7일 백악관에서 폴란드와 체코에 각각 요격미사일 기지와 레이더 기지를 구축하려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결정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동유럽 MD계획은 부시 행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 유럽 방어계획으로,러시아는 자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해왔다. 이번 조치는 오바마 정부가 국가안보 사안과 관련한 전임 행정부의 방침을 뒤집은 가장 중대한 결정이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이날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고 "동유럽 MD는 이란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한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장거리 미사일보다 이란의 중 · 단거리 미사일이 더욱 위협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고 말했다. 따라서 체코 · 폴란드 MD를 철회하는 대신 유럽 해역에 미사일 요격 기능을 갖춘 이지스함을 배치하고,2015년께 보다 비용이 싸고 고성능인 지상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으로 오는 12월 만료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을 대신할 미국과 러시아 간 새로운 포괄적 군축협상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MD 철회 발표 전날밤 폴란드와 체코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직접 걸어 배경을 설명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