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내 마음에 심은 무궁화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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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나라꽃 다 어디로 갔을까
집집마다 심어 민족혼 느껴봤으면
집집마다 심어 민족혼 느껴봤으면
지난 여름 프랑스에서 친구의 집에 한동안 머물렀는데,그 집 정원에서 우연히 무궁화 한 그루를 발견했다. 우리나라 꽃이라고 말하자,친구는 반가워하며 한국어 이름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러더니 그 집을 찾는 다른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마다 '무궁화'도 함께 소개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무궁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 물었다. 네 정원에도 무궁화가 있니?
귀국해서,작정하고 무궁화를 찾아보았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산맥 및 하천,신화,산물 따위를 수록해 중국의 자연관과 신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고대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 "동방에 군자국이 있어 무궁화가 많다"라는 구절이 나오고,애국가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 했으니,아마 이 땅에 무궁화가 지천이었던 모양이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길가에서 무궁화를 쉽게 볼 수 있었고,'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 그런데 막상 무궁화를 찾으니,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그 많던 무궁화는 다 어디로 갔을까?
요즘 무궁화는 태극기 깃봉이나 대통령 집무실이나 국회위원 배지에서 상징으로만 득세하고 있는 듯하다. 실물 무궁화는 국회나 관공서 등에 드물게 심겨 있고,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도로가나 공원,그리고 개인의 정원에선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문득 프랑스 친구의 무궁화에 대한 열정과 김춘수의 시구가 떠오르자 마음이 켕긴다. '나라꽃'이라는 영광의 관을 씌워놓고,우리는 암암리에 무궁화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니 무궁화에 대한 평가는,여름에서 가을까지 지겨울 정도로 계속 피어난다든가,진딧물이 새까맣게 모여든다든가,피부에 닿으면 병이 생긴다든가,이상하리만큼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이름 없는 들꽃이나 독초도 아니고 왜 하필 나라꽃을 이토록 모략했을까. 속설에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사들이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무궁화를 표방하자,일본이 일부러 퍼뜨린 소문이라고 한다.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유독 무궁화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배타적인 생각과 태도 때문이다.
이 가을,무궁화를 꽃 자체로 한번 바라보면 어떨까. '나라꽃'이라는 허울 좋은 관을 내려놓고,색감과 모양으로 사랑받는 다른 꽃과 같은 위치라도 되찾아주는 것이다. 홑꽃,겹꽃,천겹 등 그 모양이며,흰색,연보랏빛,붉은 보랏빛,그리고 푸른 보랏빛까지 빛깔도 다양하다. 잎은 어긋나며,꽃은 새로 자란 잎 아귀에서 하나씩 핀다. 피고 또 피어 무궁화라지만,꽃 한 송이의 수명은 놀랍게도 하루라고 한다. 하루에 수십 송이씩 거의 100일 동안 3000여 송이가 핀다니,정열의 화신이랄까. 곤충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많아 진딧물도 많은 것인데,3000송이를 피우고도 남은 영양을 곤충과 진딧물에게 내주는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이처럼 마음의 정원에 무궁화 한 그루가 자라나면,그 꽃을 도로나 정원에 옮겨 심어보면 어떨까. 그 주변을 아이들과 산책하며,그 꽃이 고조선 시대 북방으로 뻗어나던 한민족의 '근수(根樹)'이며,과거시험 급제자에게 임금이 내리던 '어사화(御賜花)'였으며,일제 강점기에 민족정신을 일깨운 나라꽃이었으며,정열과 끈기를 가진 우리 국민성을 닮은 꽃이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주면 어떨까. 기분에 따라 '무궁화'와 '과수원길'과 '텔미' 노래 등을 섞어 부르며 머리에 꽃장식도 하면서 즐겨보면 어떨까. 그래서 내려놓았던 '나라꽃'이라는 영광의 관을 무궁화에게 자연스럽게 되돌려주면 어떨까.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귀국해서,작정하고 무궁화를 찾아보았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산맥 및 하천,신화,산물 따위를 수록해 중국의 자연관과 신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고대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 "동방에 군자국이 있어 무궁화가 많다"라는 구절이 나오고,애국가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 했으니,아마 이 땅에 무궁화가 지천이었던 모양이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길가에서 무궁화를 쉽게 볼 수 있었고,'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 그런데 막상 무궁화를 찾으니,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그 많던 무궁화는 다 어디로 갔을까?
요즘 무궁화는 태극기 깃봉이나 대통령 집무실이나 국회위원 배지에서 상징으로만 득세하고 있는 듯하다. 실물 무궁화는 국회나 관공서 등에 드물게 심겨 있고,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도로가나 공원,그리고 개인의 정원에선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문득 프랑스 친구의 무궁화에 대한 열정과 김춘수의 시구가 떠오르자 마음이 켕긴다. '나라꽃'이라는 영광의 관을 씌워놓고,우리는 암암리에 무궁화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니 무궁화에 대한 평가는,여름에서 가을까지 지겨울 정도로 계속 피어난다든가,진딧물이 새까맣게 모여든다든가,피부에 닿으면 병이 생긴다든가,이상하리만큼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이름 없는 들꽃이나 독초도 아니고 왜 하필 나라꽃을 이토록 모략했을까. 속설에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사들이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무궁화를 표방하자,일본이 일부러 퍼뜨린 소문이라고 한다.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유독 무궁화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배타적인 생각과 태도 때문이다.
이 가을,무궁화를 꽃 자체로 한번 바라보면 어떨까. '나라꽃'이라는 허울 좋은 관을 내려놓고,색감과 모양으로 사랑받는 다른 꽃과 같은 위치라도 되찾아주는 것이다. 홑꽃,겹꽃,천겹 등 그 모양이며,흰색,연보랏빛,붉은 보랏빛,그리고 푸른 보랏빛까지 빛깔도 다양하다. 잎은 어긋나며,꽃은 새로 자란 잎 아귀에서 하나씩 핀다. 피고 또 피어 무궁화라지만,꽃 한 송이의 수명은 놀랍게도 하루라고 한다. 하루에 수십 송이씩 거의 100일 동안 3000여 송이가 핀다니,정열의 화신이랄까. 곤충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많아 진딧물도 많은 것인데,3000송이를 피우고도 남은 영양을 곤충과 진딧물에게 내주는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이처럼 마음의 정원에 무궁화 한 그루가 자라나면,그 꽃을 도로나 정원에 옮겨 심어보면 어떨까. 그 주변을 아이들과 산책하며,그 꽃이 고조선 시대 북방으로 뻗어나던 한민족의 '근수(根樹)'이며,과거시험 급제자에게 임금이 내리던 '어사화(御賜花)'였으며,일제 강점기에 민족정신을 일깨운 나라꽃이었으며,정열과 끈기를 가진 우리 국민성을 닮은 꽃이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주면 어떨까. 기분에 따라 '무궁화'와 '과수원길'과 '텔미' 노래 등을 섞어 부르며 머리에 꽃장식도 하면서 즐겨보면 어떨까. 그래서 내려놓았던 '나라꽃'이라는 영광의 관을 무궁화에게 자연스럽게 되돌려주면 어떨까.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