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인간 동물원'이란 책에서 '지위 섹스(Status Sex)'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순수한 욕망 충족이나 종족 번식보다는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성행위를 말한다. 음란물과 스트립 쇼에 등장하는 게 대표적 유형이라고 한다. 왜곡된 성적 환상에 기초해 파트너를 대상화 · 도구화하는데다 만족을 위해선 폭력도 서슴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단조롭고 획일화된 과밀환경에서 오래 살다보니 불안이 커져 맹목적 자극을 추구하게 된 결과라고 모리스는 진단한다.

문제는 이런 비정상적 행위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음란물이 확산된다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비디오 형태로 은밀하게 유통됐으나 이젠 '야동'이란 희한한 이름을 달고 인터넷을 통해 안방이나 사무실까지 거침없이 침투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선 버젓이 AV(Adult Video · 성인비디오)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미국 AV산업 규모는 2007년 기준 60여억달러(약 7조2000억원)로 추정된다. 중심 무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북쪽의 샌페르난도 계곡이다. 포르노산업의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포르노 밸리'로 불리는 이 계곡에선 연 5000편 이상의 '작품'이 제작된다고 한다. 경제위기로 올해는 매출이 30% 이상 줄어들었다지만 여전히 1200여명의 배우들이 활동중이라니 요지경이 따로 없다. 일본도 만만치 않아 100여 곳의 업체가 온갖 종류의 AV를 쏟아내고 있다.

미국과 일본 AV업체들이 한국 네티즌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무더기 고소한 것을 검찰이 각하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음란 영상물의 불법 유통으로 벌어들인 돈을 범죄수익으로 규정해 몰수하는 내용의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법' 개정안이 마련됐다고 한다. 의원입법으로 곧 발의될 예정인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내 사이트나 웹하드 업체는 물론 해외 업체가 수익을 얻는 것도 막아 음란물 유통을 크게 줄일 수 있다니 두고볼 일이다.

성 개방을 무조건 차단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지만 대책없이 방치하는 건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왜곡된 성 개념이 확산돼 자칫 지위섹스 같은 행위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우리사회에는 겉다르고 속다른 성의식이 만연해 있다. 음란물 근절이 어렵다면 일정 수준까지 허용하는 '레드 존'을 따로 둬 풍선효과를 줄이는 방안이라도 검토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