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여년 전 휘발유 자동차가 탄생했을 때 그 위상이 지금 처럼 높아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86년 엔진 자동차 첫 특허를 받은 독일의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1844~1929)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도무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고객이 정신병자여서 방금 판매한 차를 회수할 상황이 되자 벤츠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10년 무렵까지도 차 뒤쪽에 문이 있고 운전석과 조수석 양 옆은 트여 있어 탑승자 보호에 허술했다. 먼지와 맞바람 때문에 꼭 맞는 모자와 보호안경이 필수였다. 비바람과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방수 승마복 같은 특수 복장까지 갖춰야 했다니 얼마나 불편했을지 알 만하다.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 주인공은 미국의 헨리 포드다. 포드자동차가 1925년 개량해 내놓은 '모델T'는 내구성이 뛰어난데다 대량생산으로 가격까지 낮춰 높은 인기를 끌었다. 1927년 단종될 때까지 1500여만대나 팔렸다고 한다. 이후 자동차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현재 세계에서 달리고 있는 자동차는 9억여대로 추산된다. 미국 유럽이 자동차 소비를 주도해왔으나 이젠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는 1680만대로 인구 3명당 한 대꼴이다. 이렇다 보니 도심 평균운행속도는 뚝 떨어졌다. 서울 도심의 경우 시속 14㎞ 정도이고 부산 대구 인천 대전도 24~25㎞(국토해양부,2006년)에 불과하다. 자전거와 별 차이가 없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2007년 교통혼잡비용은 25조8620억원에 이른다.

'세계 차 없는 날'(매년 9월22일)이 생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년에 하루라도 자가용을 타지 말고 대기오염 소음 교통체증 등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1997년 프랑스 항구도시 라로쉐에서 시작돼 올해는 세계 2000여개 도시가 동참한다. 우리도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등지에서 일부 도로 차량 통행이 통제되고 주차장 사용도 제한된다.

언젠가부터 자동차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정서적으로 엮인 생활의 반려(伴侶)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많은 연료를 태워 환경에 부담을 주는데다 도심운행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친환경차 개발붐이 일고 있다지만 '완벽한 그린카'까지는 갈 길이 멀다. 22일 차 없이 지내면서 우리가 차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