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WALKMAN)'을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의 대명사로 인식해 온 일본 소니는 최근 한국 특허심판원에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소니는 한국의 운반하역기 제조업체가 크레인을 워크맨과 한글 표기가 같은 '워크맨(WORKMAN)'으로 2006년 특허청에 상표 등록한 사실을 지난해 뒤늦게 알게 됐다. 이에 "소니가 1979년부터 사용한 워크맨과 혼동을 줄 우려가 있다"며 특허심판원에 등록 무효 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다. "소니의 워크맨이 전자제품 업계에서 널리 알려졌지만 일반 공중 대부분에까지 저명한 상표라는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선점 상표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일 특허심판원에 따르면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 간 상표 분쟁으로 심판원에 심결이 청구된 건수는 2006년 388건에서 2007년 447건,2008년 495건으로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외국 기업이 한국 기업 상표에 청구한 건수가 358건으로 전체의 72.3%를 차지하는 등 대부분이 외국 업체 공세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한국에 외국 유명 브랜드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표를 앞서 등록하는 사례가 늘어 이를 무효화하려는 것이 주된 이유로 분석된다.

그러나 선점 상표의 등록을 무효화하려면 널리 알려져 있고 유명하다는 점(주지성 및 저명성)을 인정받아야 하므로 법리 공방이 치열하다. 현행 상표법 7조1항은 수요자들에게 현저하게 인식돼 있는 타인의 상품과 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는 경우 등에 해당되는 상표는 등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외국 기업이 상표를 먼저 등록하지 않았어도 타사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표를 등록할 당시 자사 브랜드가 주지 · 저명했음을 인정받으면 선점 상표를 무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워크맨' 사례처럼 주지성 및 저명성을 입증하기는 만만치 않다. 국제자동차 경주대회인 'F1'에 대한 상표권을 가진 네덜란드 '포뮬라원 라이선싱 비브이'는 국내에 바지류 등에 대해 2005년 등록된 'F&1' 상표를 상대로 무효심결을 청구했지만 지난달 기각당했다. 포뮬라원 라이선싱 비브이는 "F1 대회 참관자가 매년 300만명을 넘고 전 세계 70여개국 TV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광고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심판원은 "F1이 많은 국가에서 개최되고 있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접근성 좋은 스포츠경기가 아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회통념상 객관적으로 주지성 · 저명성이 인정되고 관련 증거가 뒷받침되면 심판원이나 법원은 외국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국내 보안점검서비스표 분야에 2006년 등록된 'SBOX' 상표가 자사 게임기 상표인 'XBOX'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청구한 등록 무효 심판에서 지난달 이겼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