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인생역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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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미국에서는 유서 미리 쓰기 붐이 일어나고 있다 한다. 특히 9ㆍ11 테러 중심지 뉴욕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유언장을 썼으며, 유언장 작성을 주로 의뢰받는 변호사들은 대목을 맞았다며 희색인 때가 있었다.
쌍둥이 빌딩 두동이 무너지는 엄청난 테러의 여파 속에 큰 충격을 받았던 뉴요커들이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불행한 사태에 대비, 유언장을 쓰는 것인데, 특히 맨해튼에서 활동중인 중산층 이상의 자녀를 둔 부부들일 수록 유언장을 더 많이 쓴다는 것이다.
유언장 쓰기 붐은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월간지인 '문예춘추' 신년호에는 '유서-80명의 혼이 담긴 기록'이라는 글이 실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의 영웅들의 유언장을 수록,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의도로 기획했다하지만, 이 기사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너도나도 유언장 미리 쓰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사실, 나는 유서를 미리 써놓는, 어찌 보면 조금은 섬뜩한 이 현상들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후에 유서 때문에 가족 간의 불화가 생기는 일이 잦기 때문.
"저, 법사님, 아버님께서 유서를 써놓으셨긴 했는데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를 찾아온 중년의 남성은 아버님께서 손수 쓰셨다는 유언장을 갖고 왔더랬다. 그의 아버님은 말기 암 환자로 시한부 판정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그런데도, 아버님께서는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착각하셨던지, 정작 중요한 것은 유서에 쓰지 않은 채, '살아 있을 적에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말씀만 잔뜩 써놓으셨던 것.
"장남인 제게 유서를 건내 주셨는데, 재산 분배라든지, 부동산 처리 문제 등은 아예 언급도 안하셨습니다. 당시만해도 살아계신 분께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고 해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 이렇게 혼란스러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그의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까지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만약,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운 채, 유서를 쓰셨다면 이런 해프닝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착각을 하고 산다. 남들이 자신을 모두 좋아한다는 착각,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다는 착각, 그리고 자신은 오래 산다는 착각이 바로 그것이다. 착각들 중, 오래 산다는 착각은 정말 고칠 길이 없어, 이렇듯 시한부 판정을 받아, 반드시 유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살 것이다'라는 착각 때문에 제대로된 유서를 쓰지 못한 채 운명을 맞이하신 것이다.
과거 로마의 귀족들은 항상 상비약으로 '청산가리'를 갖고 다녔다. 이는 귀족으로 태어나 남 앞에서 추한 몰골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 이들은 전쟁터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로 싸우러 나가기 전 자신의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하여 죽은 뒤의 자존심까지 지키려 했다.
살면서, 특히 잘 나갈 때 유서를 미리 써 놓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일면 터부시되고 있는 유서쓰기 운동. 유서를 반드시 가족에게 넘겨준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천지 신명에게 '자신이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의 시간들을 잘 정리하겠다'고 고(告)한다는 마음으로 쓴다면, 유서 한 장이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는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을까.
사람들은 인생역전을 원한다. 복권, 사업대박, 합격 등등. 인생역전을 물질적 조건으로부터 온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삶속에서 죽음을, 죽음 속에서 삶을 볼 때 인생은 역전한다. 체험해보면 알겠지만, 새날은 달력에 있지 않고 새로운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시작된다.(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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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빌딩 두동이 무너지는 엄청난 테러의 여파 속에 큰 충격을 받았던 뉴요커들이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불행한 사태에 대비, 유언장을 쓰는 것인데, 특히 맨해튼에서 활동중인 중산층 이상의 자녀를 둔 부부들일 수록 유언장을 더 많이 쓴다는 것이다.
유언장 쓰기 붐은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월간지인 '문예춘추' 신년호에는 '유서-80명의 혼이 담긴 기록'이라는 글이 실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의 영웅들의 유언장을 수록,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의도로 기획했다하지만, 이 기사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너도나도 유언장 미리 쓰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사실, 나는 유서를 미리 써놓는, 어찌 보면 조금은 섬뜩한 이 현상들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후에 유서 때문에 가족 간의 불화가 생기는 일이 잦기 때문.
"저, 법사님, 아버님께서 유서를 써놓으셨긴 했는데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를 찾아온 중년의 남성은 아버님께서 손수 쓰셨다는 유언장을 갖고 왔더랬다. 그의 아버님은 말기 암 환자로 시한부 판정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그런데도, 아버님께서는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착각하셨던지, 정작 중요한 것은 유서에 쓰지 않은 채, '살아 있을 적에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말씀만 잔뜩 써놓으셨던 것.
"장남인 제게 유서를 건내 주셨는데, 재산 분배라든지, 부동산 처리 문제 등은 아예 언급도 안하셨습니다. 당시만해도 살아계신 분께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고 해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 이렇게 혼란스러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그의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까지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만약,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운 채, 유서를 쓰셨다면 이런 해프닝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착각을 하고 산다. 남들이 자신을 모두 좋아한다는 착각,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다는 착각, 그리고 자신은 오래 산다는 착각이 바로 그것이다. 착각들 중, 오래 산다는 착각은 정말 고칠 길이 없어, 이렇듯 시한부 판정을 받아, 반드시 유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살 것이다'라는 착각 때문에 제대로된 유서를 쓰지 못한 채 운명을 맞이하신 것이다.
과거 로마의 귀족들은 항상 상비약으로 '청산가리'를 갖고 다녔다. 이는 귀족으로 태어나 남 앞에서 추한 몰골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 이들은 전쟁터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로 싸우러 나가기 전 자신의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하여 죽은 뒤의 자존심까지 지키려 했다.
살면서, 특히 잘 나갈 때 유서를 미리 써 놓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일면 터부시되고 있는 유서쓰기 운동. 유서를 반드시 가족에게 넘겨준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천지 신명에게 '자신이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의 시간들을 잘 정리하겠다'고 고(告)한다는 마음으로 쓴다면, 유서 한 장이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는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을까.
사람들은 인생역전을 원한다. 복권, 사업대박, 합격 등등. 인생역전을 물질적 조건으로부터 온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삶속에서 죽음을, 죽음 속에서 삶을 볼 때 인생은 역전한다. 체험해보면 알겠지만, 새날은 달력에 있지 않고 새로운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시작된다.(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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