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에 있는 삼일방직 제3공장.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방적기에선 우유통처럼 생긴 추에 말려 올라간 섬유 가닥이 다시 가느다란 실로 뽑히며 원뿔 모양의 실패에 끊임없이 감겨지고 있었다. 3세대 섬유로 불리는 친환경 '모달' 원사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디지털 첨단 기계설비를 갖춘 5940㎡(1800여평) 넓이의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은 12명에 불과하다.

1979년 면 방직 회사로 출발한 삼일방직은 경쟁업체보다 한발 앞선 신소재 개발과 사업 전환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다. 1992년부터 모달 텐셀 등 '레이온계(너도밤나무 등 목재 부스러기로 만든 펄프를 녹여 생산하는 인공 섬유)' 원사 생산을 시작해 현재 레이온 원사 부문에서 터키 카르수에 이어 생산 규모 기준 세계 2위에 올라섰다.

이 회사가 주력 사업을 면사(綿絲)에서 목재 펄프 소재 원사로 바꾼 것은 생존을 위해서였다. 1990년대 초 중국 면사 업체들이 공격적 시장 확대에 나섰을 때 국내 면방업계는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삼일방직은 싼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대신 모달 텐셀 등 신소재 원사 개발에 승부수를 던졌다. 노희찬 삼일방직 회장은 "면사보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다양한 가공이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레이온 원사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측한 것이 적중했다"며 "주력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신소재 개발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모달 원사는 실크에 버금가는 촉감과 면보다 뛰어난 흡습력을 갖고 있어 고급 여성 의류에 주로 사용된다. 갭 바나나리퍼블릭 바네사브루노 등 국내외 유명 의류브랜드 60여곳에 모달 원사를 판매하고 있다. 세계 모달 원사 시장이 커지면서 매출도 급증세다. 2005년 551억원이었던 매출은 3년 만인 지난해 1200억원을 넘어섰다. 작년 10월에는 230억원을 투입,월 380t의 모달 원사를 생산할 수 있는 제3공장을 완공했다.

작년 3월부터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노 회장은 "섬유산업도 자동차 전자산업처럼 시장변화를 빠르게 읽고 한발 앞서 투자에 나서야만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산업용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이 가능한 신소재 섬유 개발에 국내업체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산=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